목표 잃은 대북제재, 김정은이 과연 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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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7월 20일 10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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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김정은이 사무실에서 애플사의 일체형PC ‘아이맥’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을 북한 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왼쪽 거치대엔 태블릿PC를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3월 김정은이 사무실에서 애플사의 일체형PC ‘아이맥’ 앞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을 북한 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왼쪽 거치대엔 태블릿PC를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엊그제 국정원은 국회 정보보고에서 김정은과 이설주가 스위스 브랜드인 모바도 시계를 차고 다니고, 영국 명품 원단인 스카발 정장을 입고 다닌다고 보고했다.
이설주가 프랑스 명품 백인 디오르 클러치를 제일 좋아하고, 100만 원대 모바도가 김정은 부부의 커플 시계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으니 새삼 정보랄 것도 없다.
아마 김정은은 남쪽엔 20일 전에 출시된 애플워치를 이미 차보고 “역시 미제가 최고야”를 외치고 난 뒤일 것 같다.
김정은은 널리 알려진 ‘애플빠’다. 애플 아이맥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최신 아이패드가 발매될 때마다 시리즈별로 꼬박꼬박 구매해 간다.
그러니 북한 외교관이 애플워치를 예약 주문해 기다리다 맨 먼저 사들여 갔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유엔에서 북한 사치품 수입 통제라는 제재를 내렸어도 김정은의 호화생활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시계나 가방은 물론 수십만 달러짜리 요트에 이르기까지 김정은이 대북 제재 때문에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지금도 프랑스에선 북한 무역대표부 일꾼들이 김정은이 좋아하는 ‘메종 미셸 피카르’ 의 부르고뉴 와인을 구매 흥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북 제재가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북한 제재에 미온적이던 중국이 팔을 적극 걷어붙이면서 이곳저곳에서 북한이 괴로워하는 징후가 속속 포착되고 있다.
1일 북한이 준공식을 가진 평양 순안국제공항이 북한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순안공항을 시찰한 김정은은 주체성과 민족성이 부족하다며 다시 지을 것을 지시했다.
급히 해외에서 이것저것 자재를 사와 다시 지으려 하니 외국 업체들이 선금을 먼저 보내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대다수 송금망이 차단된 상황이라 돈을 결제하는 데 상당한 애로가 발생했다.
요즘 중국은 예전 같지 않다. 겨우 북한이 우회 송금루트를 뚫으면 어떻게 알고 또 찾아내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이 숙청되는 것을 본 북한 간부들도 필사적이었다.
북한의 모든 능력과 대외 연고가 총동원돼 겨우 기한을 맞췄다고 한다. 이런 공사가 몇 개만 더 진행됐다면 얼마나 많은 간부의 목이 날아갔을지 모르겠다.
대북 제재로 러시아 등을 통해 들여오던 전략물자의 흐름도 적잖게 끊겼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그만큼 늦어진다는 의미다. 외화를 적잖게 벌어다 주던 무기 밀매도 시원치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김정은은 아래 간부들의 어려움 따윈 관심이 없다. 이것도 하라, 저것도 하라 지시를 내리고 집행이 되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숙청한다.
이러니 대외 활동에 종사하는 간부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여건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처벌은 잔인해지니 견디다 못해 일부는 돈을 싸들고 한국 등으로 탈출한다.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앞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사는 북핵 문제로 옮겨지고 제재도 강화돼 북한의 괴로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이렇게 대북 제재로 북한이 가난해지면 김정은 체제는 위태로워질까. 충성심이 사라지고 돈맛을 안 젊은 장마당 세대가 불만 끝에 폭동이라도 일으킬까. 개인적으로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원래 의도적 빈곤은 반란을 막고 장기 독재를 유지하는 독재자의 아주 유효한 수단이다.
나도 북한에서 배고픈 고생을 워낙 많이 해봐서 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내일은 뭘 먹지 하는 생각만 떠오르지, 정치니 사회문제니 하는 주제로 고민할 여유가 없다.
무기력해진 대중에게 공포까지 더해지면 반항할 생각보다는 순종할 생각을 먼저 한다.
북한이 가난해지고 피폐해지는 것이 역설적으로 김정은 독재 유지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나 한국이 계속 요란스레 대북 압박을 가하면 김정은에겐 명분까지 생긴다.
“북한이 가난한 것은 내가 통치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미제(美帝)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고립 압살책동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메시지를 북한 인민에게 끊임없이 주입할 수 있다.
그러면 가난해진 북한 인민은 미제를 타도하라며 분노로 부글거릴 것이다. 그 뒤에서 김정은은 미제(美製) 애플 시리즈를 탐닉하며 오래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대북 제재로 얻으려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김정은을 아프게 하려는 것인지, 핵을 폐기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을 계속 궁핍에 살게 하려는 것인지.
현재론 대북제재가 김정은 개인의 삶에 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폐기할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거의 없다.
나부터도 북한이 끝까지 핵을 놓지 않겠다는 진짜 속내는 어쩌면 대북 제재를 계속 받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재제도 받지 않는데 우린 왜 이리 가난한 거지? 무엇이, 누가 문제냐”라는 의문을 주민들이 제기하는 순간이야 말로 김정은이 제일 위태로운 순간이 아닐까.
그럼에도 이란 핵 협상 타결 이후 “이제 남은 것은 북한, 압박을 강화해야”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김정은이라면 “그러시든지”라고 대꾸할지도 모른다. 김정은의 최대 관심사는 독재 체제 유지이지, 경제가 거덜 나고 인민이 굶어죽는 것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 http://blog.donga.com/nambuk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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