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뒤져 옥수수알 찾아 먹고…” 탈북女 인권 실태 증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일 16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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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살 때 배급이 안 나와서 굶어보신 분 손들어보세요.”

“부모, 형제, 친척이 굶어서 죽어가는 모습 목격하신 분 손들어보겠습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 이소연 뉴코리아여성연합 대표가 청중석을 보며 이같이 묻자 앉아있던 탈북여성 50여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이 대표는 말했다.

“북한여성들이 왜 부모·자식과 생이별하면서 탈북을 선택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꽃제비가 되고, 탈북이라는 길을 선택하고, 인신매매라는 치욕을 감당하고, 평생을 원망하며 살아야 합니까?”

탈북여성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뉴코리아여성연합은 이날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북한여성들의 인권 실상을 알리고 인권개선 및 그 가해자 처벌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탈북여성 송경옥 씨(28), 김은미 씨(33), 안혜경 씨(39)가 나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인권침해 사례를 생생히 증언했다. 이 단체에서 탈북여성의 사례를 모아 실태를 알린 적은 있지만, 당사자들이 기자회견에 직접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송 씨는 어릴 때부터 꽃제비 생활을 했다. 부모가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게 해달라고 밤마다 기도를 했는데, 북한당국이 이를 이유로 정치범으로 몰아 잡아갔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송 씨는 부모를 잃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생활을 시작했다. 먹을 게 없어서 개똥이나 거름을 뒤져 그 속에 든 옥수수 알을 씻어 먹기도 했다. 독이 든 풀을 먹고 온 몸이 붓고 앓아누운 적도 있다. 송 씨는 ‘죽을 때 죽더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2004년 탈북했고, 건강이 쇠약해진 상태로 2008년 한국에 왔다.

김 씨는 2006년 탈북해 브로커를 통해 수차례 인신매매를 당했다. 그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고 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얘기에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저도 여러분처럼 눈코입 다 있는 사람인데 물건취급을 받으면서 인신매매를 당해 팔려다녔다”며 울먹였다.

브로커들은 김 씨를 중국 산둥(山東) 성과 랴오닝(遼寧) 성 등에 사는 나이 많은 중국 남성 등에게 수차례 팔아넘겼다. 밤에 줄행랑을 친 적도 있지만 붙잡혔고, 남자 셋이 빗자루와 장작개비 등을 들고 김 씨를 때렸다. 아파서 소리를 지르자 그들은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남성들은 김 씨가 죽은 줄 알고 헌 이불로 둘둘 감아놓은 상태였다. 온 몸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무의식중에 오줌을 지렸는지 바지가 젖어있었다.

그는 어렵사리 탈출해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무보수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걸핏하면 “너네같은 거지들이 무슨 할 말이 있느냐. 전화 한통이면 북송시켜버릴 수 있다”는 협박을 당해야 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우여곡절 끝에 2010년 한국에 왔다. 안 씨는 북한 제567군부대 간호중대 사관장 출신으로, 2006년 탈북해 2010년 한국에 왔다. 그는 북한에서 군복무를 하며 목격한 여군 인권유린 실태를 털어놓았다. 북한 여군들은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기 위해 상관에게 성상납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상관들이 ‘몸을 안 주면 입당 안 시켜준다’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성 노예’가 되는 경우가 빈번했지만, 근무환경이 열악해 생리주기가 일정치 않고 성교육도 제대로 돼있지 않아 배가 부른 뒤에야 임신사실을 아는 경우가 많았다.

안 씨의 친구도 이렇게 성상납을 하다가 임신을 하게 됐다. 군은 강제로 낙태를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안 씨를 불러 군인들 앞에서 “친구 얼굴에 침을 뱉으라”고 시켰다. 안 씨가 머뭇거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채근하는 듯이 머리채를 잡았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빨리 시키는 대로 하고 나를 보내달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안 씨는 결국 침을 뱉고야 말았다. 그는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대표는 “이달 중으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각국 주한대사관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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