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일만에… 검찰내 갈등 ‘불구속 기소’ 절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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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과정 노출로 수사 망가져” 의견도

민주 “법무장관 물러나야”



민주당 김한길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정보원의 정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적법하지 않은 개입과 관련해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김 대표 오른쪽은 
전병헌 원내대표.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민주 “법무장관 물러나야” 민주당 김한길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정보원의 정치,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적법하지 않은 개입과 관련해 해임건의안 제출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김 대표 오른쪽은 전병헌 원내대표.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론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55일. 약 40일을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썼다면 나머지 15일은 원 전 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적용 및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썼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4월 18일 특별수사팀이 출범한 직후 이 사건 수사는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원 전 원장을 두 번째로 소환 조사한 뒤 신병처리가 늦어지면서 내부갈등설 등의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수사팀 내부에선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강경론’과 함부로 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신중론’이 부닥쳤다. 강경파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댓글이 일부 발견됐으니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신중파는 “선거 개입 의도를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법원에 가도 무죄”라며 맞섰다.

결국 수사팀은 법리에 대해 자문하기 위해 양론을 모두 대검찰청에 보고했고, 이 의견은 법무부에도 전달됐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수사팀이 의견을 모아오면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선거법 위반 혐의는 법리 구성에 일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보완하거나 재검토하라’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중론에 무게를 실어준 것이다. 여기에는 공안수사 전문가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거나 법무부가 외압을 행사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 안팎에선 “늘 있을 수 있는 이런 합의와 조율 과정이 외부에 노출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사진행 상황을 언론에 알리는 공식 창구가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지정돼 있었지만 수사팀 내 일부 강경파는 신중론에 가까웠던 2차장을 거치지 않고 일부 언론에 “선거법 적용이 불가피하다”며 자신들의 의견을 전체의 결론인 것처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중파는 신중파대로 “선거법 적용은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는 ‘황 장관 vs 수사팀’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황 장관과 비슷한 의견을 가진 수사팀 내 신중파 vs 강경파’의 대립구도였지만 일부 언론은 ‘황 장관이 외압을 넣었고 수사팀이 반발하고 있다’는 식의 단선적 보도를 이어갔고 야당이 황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거론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리 검토나 의견 조율은 어떤 수사에서나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외부로 공개되면서 망가진 수사가 됐다”고 말했다.

결국 수사팀은 지난 주말부터 밤을 새우다시피 토론을 거듭한 끝에 ‘선거법을 적용하되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는다’는 절충안을 꺼내들었다. 검찰은 “촉박한 공소시효 만료일(19일)을 감안해 불구속 기소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지만 불구속은 선거법 적용이라는 강경카드를 보완하는 완충재의 성격이 짙다. 일체의 정치적 판단을 배제해야 할 사안을 놓고 수사팀 내 강경파나 신중파 모두 이번 수사 속에 내포돼 있는 정치적 맥락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불구속#민주#법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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