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대선]<8>김주현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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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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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감동을 연주하는 대통령을 꿈꾼다

문화예술 육성은 21세기에 더욱 중요시되는 창의성과 소프트파워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 대선에는 여야 후보를 막론하고 뚜렷한 문화예술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문화예술을 살리기 위해서는 거창한 문화이벤트를 만들거나 문화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활 주변에서 예술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대선 기간뿐만 아니라 취임 후에도 대통령이 문화예술을 늘 가까이 즐기는 삶의 태도를 솔선수범해주면 좋겠다.

2000년 독일로 처음 유학을 갔을 때 나는 굉장한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한 식당 종업원 아저씨는 메뉴를 가져다주면서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쾰른 대성당 앞에서는 늘 거리 음악회가 열렸다. 음악적 완성도를 떠나 많은 사람이 음악을 즐기고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벨기에의 중앙역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도레미송’을 한 명, 두 명이 부르기 시작해 역에 모인 모든 사람이 함께 합창하는 감동적인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이벤트는 플래시몹으로 펼쳐져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한 지하철에서도 2003년부터 꾸준히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결과 승무원에 대한 공격, 기물 파손 등 반사회적 행동이 33% 이상 급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묻지 마 범죄, 학교 폭력 등 많은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는데, 어릴 적부터 많은 청소년이 음악과 문화를 곁에 두고 생활한다면 큰 변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다.

반드시 큰 예산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작은 ‘생각의 차이’만으로 훨씬 더 창의성과 상상력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오덴플렌이란 지하철역에는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가운데 늘 에스컬레이터만 붐볐다고 한다. 그래서 계단을 소리가 나는 피아노 건반으로 바꾸었더니 계단 이용자가 66% 늘었다고 한다. 독일 영국 등에서 수영장이 네모난 모양뿐만 아니라 피아노, 기타 등 악기 모양으로 된 것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도 있다.

문화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어야 한다. 시민공원, 길거리, 구민회관, 동사무소, 지하철역, 학교, 직장 로비에서 문화를 통해 치유받는 생활 속 문화정치를 펼쳐주길 바란다.

악보에는 멜로디와 리듬을 표시하는 음표와 도돌이표 등 수많은 기호가 있다. 그중에서 쉼표는 음표만큼 중요하다. 연주자가 쉼표의 순간적 공간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이 달라진다.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지는 피로사회라고 이야기한다. 현대인은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리고 쳇바퀴 돌 듯 ‘도돌이표 생활’이 이어진다. 문화는 삶의 쉼표 같은 것이다. 부디 차기 대통령은 순간의 놀라움을 주기보다 오랜 시간 장인정신의 감동과 깊이를 보여주는 문화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주현#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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