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광복 67주년, “오직 독립이 목표”… 좌우 넘어 똘똘 뭉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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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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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열의 희생-동토의 눈물 잊지 않겠습니다
안동 의성 김씨 내앞문중 ‘통합-혁신의 항일’ 재조명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15일부터 내년 2월까지 ‘내앞마을-독립운동으로 사그라진 겨레의 성지’를 주제로 여는 특별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15일부터 내년 2월까지 ‘내앞마을-독립운동으로 사그라진 겨레의 성지’를 주제로 여는 특별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선조들의 항일투쟁사를 얘기하려면 밤을 새워야 하죠. 어릴 적에는 하도 들어 듣기 싫었지만 지
금은 그 자부심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됐죠.”

의성 김씨 청계파 15대손인 김시중 씨(75)는 14일 독립유공자 자손으로 살아가는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백하구려(白下舊廬·경북기념물 137호)에 살고 있다. 이 고택은 전 재산을 털어 한평생 독립운동을 펼친 백하 김대락(1845∼1915)과 함께 막내 여동생 김락, 조카 만식, 정식, 규식, 규식의 아들 성로 등 독립유공자 6명의 혼이 서려 있는 곳이다.

내앞 사람들이 활약한 한족회 총회와 관련한 독립신문 1919년 10월 4일자 기사.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제공
내앞 사람들이 활약한 한족회 총회와 관련한 독립신문 1919년 10월 4일자 기사. 안동독립운동기념관 제공
광복절을 맞아 의성 김씨 내앞문중의 항일투쟁 역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백하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 유공자만 25명.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집안이라는 점도 대단하지만 당시 독립운동이란 미명 아래 이념과 사상으로 갈라진 분열과 갈등을 넘어 민족과 좌우통합 운동에 앞장섰다는 점도 높이 평가받는다.

내앞문중은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나섰다. 김시중 씨는 “지금 가치로 치면 200억 원이 넘었을 문중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썼다고 한다”고 말했다. 백하구려에 세운 협동학교는 새로운 근대사상과 서양 신문화를 받아들인 경북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다. 전통 보수의 사고에만 머물러 있던 이 지역 유림사회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른바 ‘혁신 유림’의 등장이다. 이곳은 25세 전후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펼쳐 나가며 이념의 벽을 넘어 통합을 이루려 했다.

1910년 12월 내앞문중 일가 150여 명은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경학사 한족회 같은 조직을 결성해 한인사회를 이끄는 한편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등 독립군 양성기관을 열어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일제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무장 투쟁 노선을 지키면서도 중도 민족주의자로서 모든 이념에는 개방적이었다. 1930년대까지 고향에 남아 있던 내앞마을 사람들도 돈과 인력을 모아 꾸준히 독립군기지로 보내며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최근 이 같은 내앞문중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은 15일부터 내년 2월까지 ‘내앞마을-독립운동으로 사그라진 겨레의 성지’라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개최한다. 내앞문중의 눈물과 희생, 삶과 독립운동이 주는 의미, 그리고 그들이 지키려 했던 길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의성김씨#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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