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씨 “온몸 전기고문 12시간 당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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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고문전 심전도-혈압검사 번갈아 전기고문-얼굴강타, 귀국 이튿날 외교부에 알려”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 씨(사진)는 30일 “4월 15일 저녁부터 다음 날까지 구타와 전기고문이 12시간가량 번갈아 계속됐다”며 중국 구금 당시 받은 고문 및 가혹행위를 상세히 공개했다. 김 씨가 중국 당국의 구체적인 가혹행위를 증언하기는 처음이다. 김 씨는 25일 기자회견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세부 내용은 함구했었다.

김 씨가 직접 구체적인 고문 정황을 밝히면서 이 문제가 한중 간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 씨는 이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만나서도 중국 당국의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서 상세하게 진술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아직 대응 방침을 정하지는 못했다”며 “인권침해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뒤 공식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기고문을 하기 전에 심전도와 혈압 검사를 했으며 구타를 할 때도 주먹이 아닌 손바닥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이처럼 철저한 사전준비를 한 것은 전기고문 도중에 쇼크사할 가능성을 체크하고 구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 “전기고문-구타한 中조사관 얼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씨에 따르면 3월 29일 중국 국가안전부에 체포된 뒤 가혹행위를 당하기 시작한 것은 사흘째부터였다. 손을 뒤로 하게 해 수갑을 꽉 조인 상태에서 고통을 주는 이른바 ‘수갑고문’이었다. 김 씨는 “체포 3, 4일째까지는 중국은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4월 10일부터 중국 당국은 7일 연속 잠을 재우지 않았고 15일부터 본격적인 물리적 압박을 시작했다. 조사에 앞서 복면을 씌우고 심전도검사와 혈압검사로 건강상태를 확인한 뒤 길이 50cm가량의 고압봉을 이용한 전기고문과 손바닥으로 얼굴 강타하기를 번갈아 했다.

김 씨는 “일단 전기봉을 갖다 대면 한 번 댈 때마다 4, 5군데 연쇄적으로 강한 충격이 온다. 그걸 계속한다. 가장 많이 한 곳이 등이었고 그 다음이 가슴이었다”며 “창피한 일이지만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계속 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30분∼1시간 정도 구타를 하다가 전기고문을 하는 패턴이 반복됐다”며 “조사관의 구타가 얼마나 심한지 손바닥이 아닌 주먹으로 맞았으면 뼈가 부러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고문한 사람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기고문은 특정 부위에 집중하지 않고 신체 전 부위에 걸쳐 이뤄졌다. 이 때문에 물증이 될 외상이 특별히 남지 않았다. 김 씨는 “아마도 외상이 있다면 등 쪽에 상처가 난 것 같았는데, 중국이 상처를 보도록 허락해주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가혹행위는 모두 12시간여에 걸쳐 이뤄졌다.

[채널A 영상] 김영환 “1박2일 전기고문 당해”

다만 김 씨는 깍지 낀 손을 무릎 밑으로 집어넣고 그 사이로 막대기를 통과시킨 다음 거꾸로 매달아 구타하는 ‘통닭구이 고문’이나 양팔과 다리를 뒤로 꺾어 매달아 놓는 ‘비둘기 고문’, 물속에 처박거나 얼굴에 물을 붓는 ‘물고문’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기고문을 당한 김 씨는 결국 체포 19일째인 16일 묵비권을 풀고 중국 조사에 응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고문은 중단됐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한 달 내내 책상과 연결된 의자에 앉아 수갑에 묶인 채 잠을 자야 했다.

김 씨는 4월 28일 단둥(丹東)구치소로 이감되고 나서야 가혹행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김 씨는 25일 기자회견 때 고문 사실을 상세히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정부에서 신중하게 대해줄 것을 당부했고, 여전히 중국에 남아 있는 활동가들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중국이 영사접견을 처음 허용한 4월 26일 한국 정부에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김 씨를 찾아온 영사는 ‘혹시 가혹행위를 당했느냐’고 물었고, 김 씨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가혹행위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했다. 5∼10초쯤 침묵하던 영사는 “그러냐”고 답했고 문답은 그게 끝이었다.

당시 랴오닝(遼寧) 성 국가안전청 단둥수사국 면회실 안에는 4명의 안전청 요원이, 면회실 밖에도 다른 직원이 입회해 영사접견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전기고문과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당한 사실은 2차 영사접견이 이뤄진 6월 11일에야 간략히 알릴 수 있었다.

김 씨는 귀국 이튿날인 이달 21일 외교통상부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소상히 설명했다. 전기고문과 가혹행위 사실도 알렸다. 하지만 김 씨는 “오늘까지 외교부에서 추가로 묻는 것도 없었고 내가 외교부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들은 것도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최근 이규형 주중 한국대사에게 ‘가혹행위에 대해 중국 측 차관급 이상 고위층을 접촉해 답변을 받아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중국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이 대사의 면담 요청에 답변도 주지 않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인권운동가#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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