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빌려쓰기’ 초유의 파행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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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 공백 장기화 따라 다른 小部소속 임시투입… 전원합의체도 무기 연기

국회가 대법관 4명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미루면서 공백사태가 길어지자 대법원이 소부(小部) 선고에 다른 소부의 대법관을 임시로 투입하는 ‘대직(代職)’을 하기로 25일 결정했다. 3개로 나뉜 소부(각 4명으로 구성) 중 김능환 안대희 대법관이 퇴임해 2명이 빠지고 이인복 박병대 대법관만 남은 1부에 2부 소속인 양창수 대법관을 참여시켜 26일 선고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대직은 2008년 8월 신임 대법관 취임 전에 한 대법관이 휴가를 냄에 따라 이뤄진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는 상고 이유서를 내지 않은 단순 사건을 상고 기각 처리한 것이었다. 64년 사법 역사에서 대법관 공백으로 정식 재판을 대직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행 법원조직법상 소부 선고는 대법관 3명 이상이 있어야 가능하다. 대법원은 1부에 계류 중인 사건 중 선고가 시급하고 쟁점을 크게 다투지 않는 사건 143건의 선고를 진행하기로 했다. 양 대법관은 당분간 1부와 2부 사건 선고 및 심리에 모두 관여하게 된다. 대법관이 각 1명씩 빠진 2부와 3부도 26일 선고를 하지만 쟁점이 많고 복잡한 큰 사건의 선고는 모두 후임 대법관 선임 이후로 미뤘다.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되는 전원합의체도 문제다. 전원합의체는 5일 마지막 선고가 열린 후 신임 대법관 4명이 충원될 때까지 선고를 하지 않기로 했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에 선고를 하지만 19일에는 아예 선고 기일을 잡지 않고 넘어갔다. 법적으로는 3분의 2인 9명만 있으면 선고가 가능하지만 첨예한 쟁점이 있는 전원합의체 사건의 특성상 대법관 공백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대법원은 판단하고 있다.

대법원이 대직이라는 고육책까지 쓰게 되면서 대법관 공백사태의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사건 부담이 더 커져 제대로 심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이는 전반적인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법부 전체가 느끼는 불안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여야 합의가 안 될 경우 대법관 후보 임명동의안을 8월 1일 직권상정할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처리 여부는 불투명하다. 야당은 “8월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하자”는 태도지만 새누리당은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 구인을 막는 방탄국회를 열지 않겠다”며 강 의장에게 대법관 임명 동의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다.
:: 대직 ::

법관이 본래 업무 이외에 다른 부의 사건 심리나 재판 직무를 대행하는 일.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대법관 공백사태#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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