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에 바란다/반성과 다짐]18대 왜 ‘최악’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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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걷어차고 ‘명령’따라 몸싸움… 해머-최루탄에 난장판

“합의를 해도 의원총회에서 판판이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18대 국회에서 지난 4년간 치열한 협상을 벌인 여야 원내지도부들은 국회 폭력 발생 이유 중 하나로 당내 강경파의 반대를 꼽았다.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 등 여야 4인방이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도 “양보를 너무 많이 했다”며 오히려 추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표 사례로 지난해 11월 22일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단독 처리를 들었다. 이명규 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사실상 여야 합의가 됐는데도 한미 FTA 처리가 빨리 안 되자 당 일각에서 황우여 원내대표를 끌어내리려고 했다”며 “당내 분위기 때문에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여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민주당도 사정은 비슷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해 10월 30일 피해보전 대책과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절충안 등이 담긴 여야 원내대표 합의문에 서명했지만 다음 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곧바로 거부됐다. ISD에 대한 한미 간 협의는 협정 발효 뒤가 아니라 비준 전에 해야 한다는 강경파 주장이 힘을 받은 것이다. 이후 당내 강경파는 ISD 폐기를 강력히 주장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찾아 제시한 양보안마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해 11월 22일 비준안 처리를 놓고 국회 본회의장은 당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터뜨린 최루탄으로 난장판이 됐다.

강제 당론도 국회를 싸움터로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9년 당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던 김정훈 의원은 7월 22일 미디어관계법 본회의 처리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의원은 “여야가 법안 내용보다는 자당 이익을 위한 전략과 구도에 따라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날 오전 당시 안상수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단상점거 명령을 내렸고, 의총장에 모여 있던 100여 명의 의원들은 일사천리로 의장석을 둘러쌌다.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즉각 의원들과 보좌진을 동원해 본회의장 출입문을 쇠사슬 등으로 봉쇄하며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추가 출입을 막았다. 본회의장 앞은 여야의 거친 몸싸움이 일어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18대 국회의 극한 대립은 예견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야는 2007년 12월 대선에서 치열하게 맞붙으면서 앙금이 쌓였다. 시기적으로 여야 간 타협과 합의정신이 제대로 가동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18대 국회 첫 개원도 힘겨루기를 하다가 88일 만인 2008년 8월 26일에서야 이뤄졌다. 새누리당의 전 핵심 당직자는 “18대 국회는 대선 직후 서로에 대한 증오감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4년 내내 폭력국회로 이어진 것”이라며 “19대 국회도 대선을 앞두고 있어 개원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첨예한 여야 대결구도의 완화를 위한 방안으로 원내대표단에 협상 재량권을 더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던 우윤근 의원은 “정치는 협상의 기술”이라며 “여당은 청와대로부터 간섭받지 말고, 야당은 당 지도부 회의나 의원총회에서 협상해온 결과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량의 폭이 적으면 여야 원내지도부는 공격 또는 방어만 하게 된다”면서 “과감하게 재량권을 줘서 협상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운영위원회를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운영위에는 여야 원내대표와 부대표단 등 20여 명이 참석하기 때문에 여기에 협상 권한을 부여하고 충분히 논의하면 된다는 취지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국회#18대#해머#최루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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