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 개막 쇼]할아버지 흉내 낸 김정은, 부족한 리더십 포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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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김일성’ 따라하기

흰색 군복 입은 ‘청년 김일성’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53년 7월 흰색 군복을 입고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동아일보DB
흰색 군복 입은 ‘청년 김일성’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53년 7월 흰색 군복을 입고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모습. 동아일보DB
30세의 젊은 목소리를 감추려는 듯한 굵직한 중저음, 입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발성법,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제스처, 비트는 듯 몸을 흔드는 움직임….

15일 육성이 처음 공개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대중연설은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많은 사람 앞에서 높아지기 마련인 목청을 의도적으로 깔아 내렸고 연설의 톤도 책을 읽듯 단조로웠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분명 누군가를 흉내 내려는 듯한 연출이었다. 그건 바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이었다.

○ 권위와 권력의 연속성 강조


동아일보는 이날 공개된 김정은의 목소리를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과 함께 음성학적으로 분석했다. 배 교수는 김일성이 사망 직전인 1994년 신년사에 했던 연설과 김정은의 이날 연설 목소리를 비교한 결과 두 사람의 발성 속도와 방법, 목소리의 파장 형태 등에서 85∼92% 수준의 유사성을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배 교수는 “말투의 특성은 70% 정도가 발성 속도에 의해 좌우되는데,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자연적으로 발성 속도가 이 정도로 비슷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주석 특유의 발성법에 맞추기 위해 김정은이 고도의 훈련을 받았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은 발성 방법에서도 할아버지를 따라하려는 특징이 드러났다. 배 교수는 “젊은 사람이라면 지금보다 고음이 더 많이 나오고 입 모양도 더 커야 하는데, 김정은은 고령인 김일성처럼 입을 크게 열지 않고 카리스마 있는 중저음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목소리 파장이 129헤르츠(Hz) 정도인데, 이는 김일성의 중저음과 거의 일치한다. 반면 김정일은 목소리에 여러 음이 동시에 나는 ‘복합음’이 많고 두 사람보다 고음을 자주 사용했다.

음성 등 생체신호를 통한 심리분석 전문가인 충북도립대 조동욱 교수는 “김정은이 권위와 안정감을 보여주기 위해 나이가 들어보이게 연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의 음성피치(초당 성대의 떨림) 평균값이 133으로 같은 연령의 150∼180보다 낮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목소리의 강도(인텐시티)도 50으로 또래의 평균치(75)보다 현격히 낮았다.

지난해 말 김정일 조문 차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던 김홍업 전 민주당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고 발음이 또렷했지만 저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무게감이 있는 목소리였느냐’는 질문에도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답해 김정은의 저음 연출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 김일성 시대 연상시킨 열병식


이날 김정은의 연설과 함께 열병식에서도 ‘김일성 시대’를 재연하려는 듯한 북한의 의도가 곳곳에 엿보였다. 항일 빨치산 부대 군복 차림의 군부대가 등장하는 한편 열병식 사상 처음으로 기마부대까지 선보였다. 기수들은 만주벌판의 흰 눈을 연상케 하는 흰색 망토를 걸쳐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과 함께 주석단에 선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 등 핵심 군부 인사들도 흰색 군복 차림이었다. 김일성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직후 평양에서 열린 ‘전승열병식’에 흰색 원수복(군복)을 입고 나타났다. 당시 최용건 남일 등 김일성 측근들도 흰색 군복을 착용했다. 김정은의 군부 측근들이 쓴 모자도 김일성이 전승열병식에서 썼던 모자와 모양이 같았다.

○ 할아버지 흉내 내기


김정은의 ‘할아버지 따라하기’는 2010년 9월 당 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공식화됐을 때부터 이미 시작됐다. 김정은은 학창시절의 홀쭉하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통통한 얼굴로 등장했다. 앞머리는 뒤로 넘기고 옆머리는 짧게 깎았으며, 어두운 색의 인민복을 입어 헤어스타일과 패션도 모두 김 주석과 닮아 있었다.

김정은은 이후에도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옷차림과 발걸음, 손짓을 연출했다. 지난해 12월 아버지의 영결식과 추도대회에서 입은 검은색의 투 버튼 코트도 김 주석이 젊은 시절 자주 입었던 스타일의 옷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김일성과 닮게 보이려고 6차례의 성형수술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런 모든 연출은 김정은에게 김일성의 후광을 덧입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나이가 어린 데다 정치 경험이 없는 김정은으로서는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앞세워 북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끌어내야 할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을 정당화하고 후계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억지로 ‘김일성 향수’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북한#김정은#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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