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만 잡힌 불법사찰… 檢, 영포라인 겨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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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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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 前주무관 “靑이 증거인멸 지시” 폭로 후폭풍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과 관련해 최근 “청와대가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7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최종석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조사를 받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최 전 비서관은 장 전 주무관이 최근 ‘청와대의 증거인멸 지시’ 의혹을 폭로하면서 자신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했다고 지목한 인물이다. 현재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노무관으로 근무 중인 최 전 행정관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 이후 일주일간 미국 동북부 지방으로 출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선 “어떤 식으로든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재수사로 ‘윗선’ 의혹 드러날까

검찰이 재수사를 결정하면 장 전 주무관에 대한 조사가 우선이다. 장 전 주무관은 이날 통화에서 “공무원으로서 마지막 임무가 있다면 이런 사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검찰이 재수사를 한다면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너무 괴로웠다. 언젠가는 밝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최 전 행정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면 검찰 수사 당시 의혹으로만 남아 있던 ‘윗선’으로의 수사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수사팀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 등 이명박 대통령과 고향이 같은 공직자들인 ‘영포(영일·포항) 라인’이 사건의 축소 은폐를 주도했다”는 정황을 여럿 확보했지만 형사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장 전 주무관은 이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건넸다. 그는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지시한 날 오후 ‘앞으로 이걸로 보고하라’며 준 대포폰은 오전까지 이 전 비서관이 쓰던 거라고 했다”고 말했다. 폭로가 재수사로 이어진다면 당시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조직적인 개입 의혹을 밝히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폭로 수위 점점 높아져

장 전 주무관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검찰 수사 결과는 뒤집힐 수 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들은 장 전 주무관의 폭로 내용에 대해 “그때는 없었던 진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 전 주무관은 최근 “검찰 압수수색 이틀 전인 2010년 7월 7일 최 전 행정관이 내게 ‘(민간인 사찰을 맡았던) 점검1팀의 모든 컴퓨터와 진경락 전 국무총리실 기획총괄과장의 컴퓨터를 한강에 버리든 부수든 물리적으로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최 전 행정관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나 검찰과 모두 얘기를 끝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최 전 행정관이 그날 오후 나를 불러 대포폰을 주면서 ‘지금부터 이 전화기로 보고하라’고 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는 증거인멸의 구체적인 정황도 폭로했다. 또 ‘검찰의 축소 수사’ 의혹에 더해 “최 전 행정관에게서 들었다”며 “검찰이 증거인멸을 요구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 민정수석비서관실 개입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많아


장 전 주무관은 최 전 행정관의 발언을 인용해 증거 인멸에 민정수석비서관실이 개입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도 많다. 사정 당국에 따르면 2008년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은 청와대 안팎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실이 이를 문제 삼아 고용노사비서관실 직원들의 전횡을 견제하려 하면서 두 부서 간에 잡음이 있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민정수석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고용노사비서관실의 ‘과잉충성’이 빚은 불법행위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기 때문에 견제는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 2010년 검찰 수사 때 ‘사찰 배후’ 규명 실패

이 사건은 2008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인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불법 사찰한 사실이 폭로돼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김 전 대표가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일명 ‘쥐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를 문제 삼아 국민은행 하청업체인 민간회사 KB한마음을 영장 없이 압수수색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 전 대표를 횡령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으나 김 전 대표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김 전 대표는 곧바로 불법 사찰을 언론에 폭로했다. 수사를 맡은 검찰은 2010년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 장 전 주무관 등 사찰 실무자들을 기소하고 불법 사찰·증거인멸 수사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의혹이 짙었던 ‘사찰의 배후’를 밝히지 못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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