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입다문 ‘기소청탁’… ‘불편한 진실’을 듣고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 김재호 전 서울서부지법 판사(현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에게서 기소 청탁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박은정 전 서울서부지검 검사(현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가 2일 사표를 제출했지만 대검찰청이 반려했다. 박 검사도 이날 오후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사의 표명 글을 내려 박 검사의 사표 제출은 철회 쪽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박 검사는 기소 청탁을 받았는지 등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하면서 휴가를 내고 외부와 접촉을 끊어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김 판사도 마찬가지다. 부인인 나 전 의원이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남편이 기소 청탁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정작 본인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검찰과 법원 등 핵심 당사자가 속해 있는 두 기관도 입을 다물고 있어 국민의 궁금증만 커지고 있다.

○ 박 검사 등 핵심 당사자 계속 함구

박 검사는 2일 오전 7시 55분 검찰 내부통신망인 ‘e-프로스’에 사의를 표명하는 글을 올렸다.

박 검사가 글을 올리자 박 검사가 근무 중인 부천지청의 우병우 지청장과 송인택 차장은 박 검사를 면담하고 사의를 만류했다. 면담에서 “사직서를 왜 내느냐. 재고해 보라”는 말에 박 검사는 “잠도 못 자고 힘들어서 도저히 근무 못 하겠다. 휴가를 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검사는 일단 7일까지 휴가를 내고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청사를 떠났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이날 오전 11시 반경 박계현 대변인을 통해 “박 검사가 최근 사태와 관련해 사표를 제출했으나 대검은 현재로서는 박 검사에게 책임을 물을 사유가 없으므로 사직서를 반려할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박 검사는 이날 오후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렸던 사의표명의 글을 스스로 내려 사표 제출을 철회할 뜻을 내비쳤다.

전날 부인인 나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남편이 기소 청탁을 한 적 없다”며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내긴 했지만 의혹의 당사자인 김 판사의 침묵은 이날도 계속됐다. 경찰은 핵심 당사자에 대한 조사를 어떻게 할지조차도 여전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경찰 수사 단계여서 뭐라고 이야기할 게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진상 파악 정도는 한 거냐” “시원하게 얘기를 좀 해 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같은 답을 반복했다. 법원도 사태를 관망하면서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 법조계 “의혹 커지는데 침묵한다고 해결되나” ▼

○ 법조계,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의혹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전날 남편의 기소 청탁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남편이 전화 등을 통해 접촉한 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고 “기소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2006년 1월 서울서부지검에서 출산휴가를 앞둔 박 검사로부터 문제의 사건을 넘겨받은 최영운 대구지검 김천지청 부장검사도 “김 판사와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하면서도 박 검사에게서 청탁 전달을 받았는지 등 다른 청탁 전달 가능성에 대해서는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다소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소 청탁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박 검사가 사표 제출이란 ‘초강수’를 들고 나온 점, 김 판사가 직접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점, 나 전 의원이 남편의 전화 접촉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있는 점, 자체적으로 경위를 파악한 대검찰청과 대법원이 “경찰 수사 중”이란 이유로 결과 공개를 꺼리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김 판사가 박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 등 접촉은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박 검사와 김 판사 등 핵심 당사자 2명이 진실을 고백하고, 검찰과 법원도 파악된 만큼이라도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지봉 교수는 “이번 사안은 현직 판사가 수사검사에게 기소를 청탁했다는 것이어서 만약 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법원이든 검찰이든 조직에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당사자들이 언론접촉을 피하고 함구하고 있지만 국민적 관심사가 된 이상 당사자가 회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부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