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앤드 더 시티’ 정치권서 좀 더 관심있게 봤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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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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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소비 트렌드를 알면 표심이 보인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2’로 본 5가지 키워드

《 이념에 따른 정당 지지가 줄면서 유권자의 후보 선택 행위가 소비자의 구매 행위와 비슷해지고 있다. 소비자의 지갑이나 유권자의 마음을 열려면 우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2’의 틀로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5가지 트렌드를 짚어봤다. 》
① 진정성을 느끼게 하라

진정성은 사회적인 화두로 자리 잡았다. TV에서는 리얼리티쇼나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정치권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진정성을 강조하는 화법을 즐겨 쓴다. 정보량 급증에 따라 거짓과 과장도 함께 늘면서 진정성은 올해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김 교수팀은 ‘진심인데…’를 강조하는 방식으로는 소비자들이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일관된 정체성’이 있거나 “맞아 맞아”하며 손뼉을 칠 수 있는 ‘경험적 공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Mnet ‘슈퍼스타K 3’의 우승팀인 남성 4인조 보컬 ‘울랄라세션’과 KBS2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이 각각의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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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최근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 용어 삭제 여부로 논란을 벌였지만 국민은 시큰둥해했다. ‘보수’ 용어를 뺀다고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이 아니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급조된 정체성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② ‘정치 세시봉’을 찾아라


지역 갈등 시대가 가고 세대 갈등 시대가 왔다? 세대 간 벽이 공고해 보이지만 문화와 소비 영역에서 세대 구분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장·노년 세대는 예전보다 외모 관리나 여가 생활 욕구가 크다. 젊은 세대의 복고(復古) 열풍도 거세다. 196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이었던 세시봉 스타들의 콘서트는 지난해 히트 상품이었다.

김 교수팀은 올해 트렌드의 하나로 ‘세대 공감’을 꼽았다.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소비자를 세대로 잘게 나눌 때보다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은 최근의 ‘세대 투표’ 양상을 보고 2040세대 표심 잡기에만 몰두해 있다. 대학등록금 부담, 보육, 전·월세난 등 2040세대 이슈는 최우선 과제가 됐다. 이들을 직접 4·11총선 후보로 내세우는 방안도 고심 중이다. 하지만 청년층(25∼35세) 비례대표를 오디션 방식으로 뽑겠다는 민주통합당의 계획은 신청 부진으로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다. 나이에 초점을 맞춘 ‘묻지 마’ 방식이 오히려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③ ‘대안 리더십’을 보여라


요즘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차선을 택한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금전적, 시간적 투자가 들어가는 ‘플랜A’보다 다소 부족하지만 당장 실현할 수 있는 ‘플랜B’에서 심리적 안정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한 필지에 집 두 채를 붙여 짓는 일명 ‘땅콩주택’은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 전원주택을 즐기려는 이들의 절충적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김 교수팀은 정치에서도 비전을 제시하며 ‘나를 따르라’는 식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플랜A 리더십보다 실용적인 대안을 내놓는 플랜B 리더십이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들인 한국의 ‘리버테리언(libertarian) 유권자’를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태어나 고등교육, 세계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세례를 받았다. 종래의 보수·진보 개념만으로는 이들의 사고와 행태를 설명하기 어렵다. 언제든 자신의 불만을 해소해 줄 인물을 밀 태세가 돼 있다는 얘기다.
④ 히스토리보다 스토리


‘세상에 없던 ○○○.’ 최근 자주 보이는 광고 문구다. 기존에 없던 것에 눈을 돌리는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그만큼 요즘의 소비자는 충성심이 약하다. 김 교수팀은 전통과 명성 등 히스토리를 앞세운 상품보다 흥미나 감동을 주는 스토리를 가진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1996년 론칭한 영국의 구두 브랜드 ‘지미추’는 스토리가 히스토리를 이긴 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한 여주인공은 어딘가를 뛰어가다 샌들 끈이 끊어지자 “‘마이 추’(지미추 구두의 애칭)가 망가졌네”란 대사를 날렸고, 이 신생 브랜드는 전 세계 여성들의 ‘잇 슈즈(it shoes)’가 됐다.

정치권에서도 ‘집토끼’의 존재는 예전 같지 않다. 성공신화나 명성을 가진 인사를 후보로 내놓는다고 곧장 표를 주진 않는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소통’을 내세워 방송인 강호동 씨, 나승연 전 평창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대변인 등의 영입을 추진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 총선에서 잠재력과 스토리를 가진 정치 신인이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도 있다.
⑤ 창조적 소비의 시대

불만을 느낀 소비자들은 더는 기업만 바라보지 않는다. 국내에 원하는 상품이 없으면 해외 사이트를 서핑해 구매하고, 세상에 없으면 직접 만들어 블로그에 올린다. 스스로 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고무 신발 ‘크록스’의 전용 장식품 ‘지비츠’는 이 신발의 열혈팬이었던 주부의 장난 같은 영감에서 시작돼 전 세계에 1100여 종이 팔리고 있다.

최근 선거에선 유권자도 소비자의 구매 행위처럼 선거 과정 자체를 즐긴다. 이는 놀이로 그치지 않고 후보를 당선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10·26 재·보궐선거에서 SNS 공간에서의 ‘투표 인증샷’은 젊은 세대의 투표율 향상에 영향을 미쳤다.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후보를 위해선 ‘서포터스’도 자처한다.

김 교수팀은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은 이제 소비자라고 지적한다. 기업은 SNS를 광고 수단이 아니라 소비자끼리의 잡담을 들을 수 있는 창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피드백하는 세력이 선택 받는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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