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민주주의 대공황을 넘자]‘87년 체제’에 갇힌 정치… SNS 바람앞에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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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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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청산 기여했지만 당리당략-기득권 치중하며 이념-지역-계층 갈등 조장
청산할 ‘앙시앵레짐’으로

“‘1987년 체제’는 무너지는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정치 현상은 87년 체제에 기반을 둔 정당정치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 많다. 정치권 밖에서 몰아치는 돌풍은 87년 체제로부터 이어져온 현재의 정당정치, 정치 질서를 국민이 직접 바꾸겠다는 선언이란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기존 정당의 조직과 돈을 위협하는 젊은 세대의 강력한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안철수, 박원순 현상은 87년 체제의 ‘보수와 진보의 기득권 담합체제’에 대한 사회적 반격”이라며 “국민은 이제 정권교체 이전에 ‘정치교체’를 열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온 1987년 6월 항쟁은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다. 불법 체포와 고문, 공포정치가 사라지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도 걷혔다. 그러나 이후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가는 과정에선 정치사회적 모순이 축적돼 갔다.

명지대 교양학부 김형준 교수(정치학)는 87년 체제의 문제점을 ①중앙당 중심의 정치 독점화 ②김영삼(YS) 김대중(DJ) 등 특정 인물로의 권력 집중화 ③3김과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결합한 지역주의로 압축한다.

여야 정당은 이념 정책 지역이 원칙 없이 뒤섞인 채 보스의 의지에 따라 운명이 좌우됐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양극화와 이해집단 간 갈등은 더욱 심화됐고 이념 지역 계층 등 다양한 형태의 정치, 사회 갈등이 분출됐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늘 사익(私益)과 당리당략에만 치중했다. 이해 대립과 갈등을 조정할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마련하기는커녕 절대 권력을 지닌 대통령 5년 단임제하에서 정치권은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식의 정쟁에 몰두했다.

요즘 정치권 풍경이 조선 후기 당쟁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300여 년 전 효종의 승하 후 조 대비(효종의 의붓어머니)가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할지(예송·禮訟 논쟁)를 둘러싸고 대립한 서인과 남인, 경종의 즉위 문제를 놓고 대치한 노론과 소론 등이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해 사생결단식의 싸움을 벌였던 것과 현재의 정치권이 뭐가 다르냐는 얘기다. 역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조선이 정권 유지를 위해 죽고 죽이는 살육전, 국민과 동떨어진 논쟁에만 집중한 당쟁의 폐해로 인해 결국은 망했다는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학계 원로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최장집 교수는 그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것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갈파한 바 있다. 87년 체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단계에서 역사적인 획을 그었다. 하지만 87년 체제는 2011년 말 현재 또 다른 의미에서 발전적으로 극복돼야 할 ‘앙시앵레짐(구체제)’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1987년 체제::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운동을 통해 오랜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이때 확립된 민주 헌정질서를 1987년 체제라고 부른다. 대통령 5년 단임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지역주의와 결합하면서 현행 한나라당 민주당의 양당 체제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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