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묻지마 폭로’ 악습 왜 못 끊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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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구조… “선거 이기면 끝” 죽기 아니면 살기 정치그들만의 온정… 고소-고발 난타전… 지나면 대부분 취하면책특권 악용… 국회 대정부질문, 실명 거론해가며 공세

저축은행 부실 및 로비의혹 사건으로 이목이 집중된 6월 국회 대정부질문은 전형적인 ‘폭로장(場)’이었다. 여야는 전 정권과 현 정권에 책임이 있다며 난타전을 벌였다. 한나라당이 민주당 박지원, 김진표 전·현 원내대표가 저축은행 로비의혹에 연루됐다고 주장하자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역공을 폈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

올해 1월 한나라당 안상수 당시 대표의 차남이 서울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부정 입학했다는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의혹 제기는 대표적인 ‘거짓 폭로’였다.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 의원의 제보가 정확하다”며 거들고 나섰지만 반나절 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 의원은 서울대에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의 거짓 폭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자 결국 민주당 손학규 대표까지 나서 머리를 숙였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의 ‘몸통’”이라고 한 주장도 근거를 내놓지 못한 전형적인 ‘묻지 마 폭로’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승자독식(勝者獨食) 구조 속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정치 행태와 정치권 특유의 온정주의가 이런 거짓 폭로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올 4월 당시 한나라당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양당 간에 걸린 모든 고소 고발을 취하하는 ‘통 큰’ 합의를 했다. 안상수 전 대표 차남의 서울대 로스쿨 부정 입학 의혹을 제기했던 이석현 의원에 대한 민사 형사 고발도 함께 취하됐다. 서로 폭로전을 벌인 끝에 상호 고소 고발까지 갔다가 어느 정도 냉각기에 접어들면 고소 고발을 취하하는 등 적당히 타협하는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만 높아지고 있다. 정치인들도 폭로에 대한 대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감증에 걸려 있다. 나아가 국회의원들은 면책특권의 뒤에 숨어 ‘거짓말 공화국’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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