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단일화 뒷거래’ 파장]작년 5월 곽노현-박명기 후보단일화 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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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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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물밑접촉 ‘7억보전’ 약속… 19일 “원로 결정에 용퇴” 회견

어지러운 출근길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 교육청에 출근하고 있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무실로 향했다. 양회성 기자yohan@donga.com
어지러운 출근길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30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 교육청에 출근하고 있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무실로 향했다. 양회성 기자yohan@donga.com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는 지난해 5월 19일 진보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선거가 보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날 두 후보가 서울 중구 정동 환경재단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사회 원로들의 숙의로 단일화가 결정됐다”고 발표할 때는 김상근 목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청화 스님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대의를 위해 시민단체의 중재를 받아들이는 형식이었고, 이후 좌파 및 진보단체의 지지선언이 잇따랐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단일화의 실체는 겉모습과 달리 ‘검은 거래’였다.

단일화를 이끌었던 김 목사는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교수가 후보 사퇴를 고심한다는 걸 우연히 알고 (지난해 5월) 19일 오전 환경재단으로 두 후보를 따로따로 불렀다”고 말했다.

김 목사, 백 교수, 청화 스님 등 3명은 오전 10시경 도착한 박 교수에게 “어느 누구에게 사퇴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둘 다 안 된다”고 했다. 30분쯤 뒤에는 곽 후보에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박 교수는 상당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곽 후보는 딱한 표정이었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다는 것 같았다”고 김 목사는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김 목사 등은 두 후보를 함께 부른 뒤 “두 분이 협의해 단일화를 해달라”고 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런데 박 교수가 “내가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박 교수가 바로 답해 놀랐다. 하지만 감동했고, 바로 기자회견문을 작성했다”고 했다.

이들은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 교육 발전을 이룰 중요한 계기라는 데 공감했고, 단일화를 시민사회 원로들에게 위임했다. 박 후보가 대승적 차원에서 용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두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한 뒤 좌파 및 진보단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민사회, 종교계, 교육계 등 2177명이 20일 서울교육희망 지지선언을 했다. 곽 후보는 23일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어 참여연대와 민교협 등 162개 단체가 26일 “진정성 있는 부패 추방 대안을 갖고 있는 곽 후보를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31일에는 김 목사와 백 교수, 고은 시인, 함세웅 신부 등 원로 30여 명이 교육희망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했다.


○ 사퇴조건 놓고 흥정 계속

김 목사의 설명과 기자회견 상황만 보면 진보진영은 선거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박 교수가 대의를 위해 물러선 듯이 보인다.

그러나 박 교수와 측근 A 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단일화 논의는 사실상 18일에 끝난 상태였다.

곽 후보는 16일경 박 교수에게 직접 “(선거에 끝까지 출마한다면) 당신은 낙선할 것이고, 진보민주진영에서 매장당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어 17일 곽 후보 측은 후보 단일화를 제의하면서 서울교대 총장 선거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검찰이 확보한 녹취록에는 “단일화 대가로 7억 원을 준다”는 발언내용이 있다. 곽 후보는 조건을 문서화하자는 박 교수의 제안은 거절했다.

곽 후보는 18일 오전 박 교수를 만나 서울시교육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직을 약속했지만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오후에 다시 만나 선거비용 7억 원을 보전해 주기로 약속했다.

이에 앞서 곽 후보는 12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박 후보도 조만간 단일화를 할 거다. 물밑접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곽 후보 측이 박 교수를 물러나도록 하기 위해 7억 원을 주기로 하고 단일화를 약속한 다음 날에 원로들과 만나고 단일화에 합의했다는 기자회견을 한 셈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단일화 과정을 깔끔하게 만들고, 진보민주진영의 단일화 후보로서 이미지를 굳히기 위한 작업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김 목사는 “(내가 아는 한) 박 후보는 자신이 출마할 때 들고 나온 정책을 수용해 달라는 조건을 걸었고, 곽 후보는 흔쾌히 응했다”며 “돈 거래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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