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자연발생적 내전론’ 깨뜨린 캐스린 웨더스비 美존스홉킨스대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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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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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남침 못믿는 사람들 있다니 안타깝다”

캐스린 웨더스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눈감고 있는 이들에 대해 “남한 군사독재시절에 고생했던 사람들이 북한체제에 대해 동경심을 가졌는데 그 영향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캐스린 웨더스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눈감고 있는 이들에 대해 “남한 군사독재시절에 고생했던 사람들이 북한체제에 대해 동경심을 가졌는데 그 영향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 명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있다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로 가려면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죠.”

6·25전쟁 등 냉전사 연구 전문가인 미국의 캐스린 웨더스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60)가 9월부터 세 학기 동안 성신여대에서 전임교수로 강의를 시작한다. 강의 주제는 ‘역사 속에서 본 남북한 관계’와 ‘1945년 이후 세계사’. 고려대 여름학기 초빙교수로 한국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는 웨더스비 교수를 1일 고려대에서 만났다.

웨더스비 교수는 1990년대 옛 소련 등 공산권의 비밀해제 문서를 연구해 6·25전쟁이 북한과 소련, 중국이 정교하게 기획한 국제전이라는 사실을 밝혔으며, 이로써 미국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수정주의 역사관을 깨뜨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커밍스 교수의 수정주의 이론이란 6·25전쟁이 1945∼1950년 한국 내부에서 발생한 사회적 모순, 특히 미군정의 남북분단 고착화로 인해 일어난 내전이며 ‘누가 방아쇠를 먼저 당겼는가’와 같은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간주하는 이론이다.

웨더스비 교수는 아직도 한국의 좌익 성향 진영에는 6·25전쟁을 남침으로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커밍스 교수의 수정주의 역사관이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며 “커밍스 교수 자신이나 그를 믿었던 사람들은 그 ‘믿음’에 너무나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태도를 바꾸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150년이 지난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해서도 아직 앙금과 오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6·25전쟁의 성격에 대해 그는 “6·25전쟁은 한반도 내 좌우 대립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특정인에 의해 특정 시점에 특정 목적을 갖고 대단히 면밀하게 계획돼 일어난 국제전”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소련의 기밀문서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방대하면서도 정교하게 작성되는데, 그 문서를 종합하면 김일성이 제안하고 스탈린이 승인하는 한편 마오쩌둥이 도움을 주면서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웨더스비 교수는 1991년부터 옛 소련 등 공산권의 비밀해제 문서를 연구해오고 있다. 그는 “6·25전쟁 전후 평양에서 김일성의 언행에 관한 자료는 물론이고 당시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동구권 국가의 기밀자료 등 아직도 연구해야 할 자료가 방대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6·25전쟁 때 미국이 세균전을 벌였다’는 설이 중국과 북한의 선전전에 따른 사실 왜곡이었음을 지난해 강규형 명지대 교수와 함께 밝혀내기도 했다.

“스탈린이 사망하자 소련 지도부는 6·25전쟁을 끝내려고 작정했지요. 그래서 중국과 북한에 강력하고 단호한 어조로 문서를 보냈는데 거기엔 ‘미국이 6·25전쟁에서 세균전을 벌였다는 공작과 선전선동 활동을 중단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중국과 북한은 사람 시체에 일부러 세균을 심어 미국의 짓이라고 꾸미는 공작까지 벌였습니다. 소련 지도부는 종전(終戰) 후 이런 사실이 드러날 경우 사회주의권에 오히려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또 웨더스비 교수는 “소련이나 위성국가의 기밀문서가 아닌 일반 문서에는 전쟁 당시 선전선동으로 퍼진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며 “루마니아나 헝가리 등의 문서에 ‘6·25전쟁은 남한의 북침에 의한 것’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선전활동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의 연구 계획에 대해 “휴전협정 당시의 소련과 중국 등의 역할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캐스린 웨더스비 교수 ::


1951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다.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한-러 관계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플로리다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1991∼1995년 러시아 외교부와 옛 소련 공산당, 국방부 등의 기밀문서를 연구했고 이후 20여 년간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냉전 국제사 프로젝트’의 6·25전쟁 연구책임자로 일했다. 2008년 한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전임교수로서 학부의 학기 중 강의를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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