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박근혜 ‘지지율 디커플링’ 올들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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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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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세론’ 오해와 진실 ① 李대통령 호재가 박근혜에겐 악재?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율이 역방향으로 치닫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멈췄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상당 기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과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국민이 박 전 대표를 사실상 여권 내 야당으로 인식하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올해 1월 이후 양측의 지지율 등락이 대체로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본보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과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다. 리얼미터는 2008년 11월 20일 이후 매주 여론조사를 해오고 있다.

○ 잠복기→디커플링기→지지율 연동기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상관관계에 따라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관계를 국민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와 맞물려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박 전 대표와의 반목이 두드러지지 않던 2009년 5월 초까지는 잠복기였다. 박 전 대표는 2009년 1월 9일 여권이 추진하는 쟁점법안에 대해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며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지만 국민은 이 시기 박 전 대표와 청와대의 갈등을 크게 느끼지는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총선 공천 파동’으로 여권 내 갈등이 극대화됐던 2008년 상반기엔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지지율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여권 내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한 2009년 5월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는 디커플링 기간이었다. 광우병 파동으로 급락했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에 육박할 만큼 급등한 반면 박 전 대표 지지율은 20%대까지 추락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지지율 최고점을 기록할 때마다 박 전 대표는 최저점을 맛봤다.

그러나 올해 1월 이후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양측은 지난해 8월 청와대 회동을 통해 세종시 수정안으로 극대화됐던 갈등 관계를 봉합했다. 하지만 국민은 박 전 대표가 지난해 12월 사회보장법기본법 전면 개정안 공청회,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범 등으로 대외 행보를 시작한 뒤부터 비로소 화합기로 접어들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여권 내 갈등이 디커플링 촉발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디커플링은 2009년 5월 친이계의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움직임에 박 전 대표가 쐐기를 박으면서 시작됐다. 직전 40%를 웃돌던 박 전 대표 지지율은 당내 계파 갈등으로 인해 30%까지 떨어지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어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청와대와 박 전 대표의 갈등이 첨예화한 2009년 9월 디커플링이 본격화됐다. 특히 지난해 2월 박 전 대표가 친이계와 정몽준 전 대표 등 당내 주요 정치인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디커플링 현상은 극에 달했다.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반대로 뛰었다.

2010년 5월에는 이 대통령이 활발한 정상 외교로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은 반면 박 전 대표는 현안에 거리를 두는 은둔 정치로 20%대의 바닥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다 올해 들어서자 삼호주얼리호 구출, 겨울올림픽 유치 등 이 대통령의 호재가 박 전 대표에게도 호재가 되고 있다.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유감 발언에도 양측의 디커플링은 한 주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 외부 위기가 지지율 연동의 동인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디커플링은 여권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일시적으로 깨지는 현상도 보였다. 외부의 위기가 내부의 단결을 돕는 효과를 낳은 셈이다.

디커플링 기간에도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조문정국’, 천안함 폭침 사건,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여권의 패배 당시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각 3주, 5주, 16주 동안 동조화를 보였다. 하지만 여권의 위기가 잦아들면 양측의 지지율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현재처럼 7개월 이상 지지율 디커플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의 초반 잠복기 이후 처음이다.  
■ 오해와 진실 ② 안보 불안하면 박근혜 지지율 떨어진다?
천안함땐 꺾였지만 연평도땐 되레 올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6년 10월까지 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줄곧 1위를 달렸다. 그러나 북한의 1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여성 정치인인 박 전 대표에게 한반도 정세 불안은 취약 요인이었다.

실제 지난해 3월 26일 천안함 침몰 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도발에 따른 안보 불안은 박 전 대표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2009년 △북한의 장거리 로켓인 은하2호와 광명성2호 시험발사(4월 5일) △2차 핵실험 감행(5월 25일) △북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월선(9월 4일) 등 주요 사건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이후엔 안보 이슈가 터져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의 도발 등으로 인한 ‘안보 정국’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 상승세가 눈에 띈다.

8월 9일 북한의 해안포 발사 때는 한 주 전에 비해 0.6%포인트 오른 25.7%를 기록했고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이 벌어졌을 때도 한 주 전보다 2.2%포인트 상승한 30.8%의 지지율을 얻은 것. 국가 안보에 관한 한 강한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려 했던 것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박 전 대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도발에는 반드시 큰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해 12월 27일 한국군의 연평도 사격훈련 단행으로 안보 불안감이 극대화됐을 때도, 올해 2월 9일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 문제로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된 직후에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 오해와 진실 ③ ‘야권 돌발주자’ 등장해도 박근혜 지지율 굳건하다?
한명숙 2위 진입때 朴지지율 최대 하락


‘박근혜 대세론’에 가장 위협적인 차기 대선주자는 누구일까.

리얼미터가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를 시작한 2008년 11월 이후 줄곧 1위를 차지해 온 박 전 대표의 뒤를 다양한 여야 주자가 들락거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 특정 시기 2위를 차지한 주자들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 변화를 측정했다. 또 순위에 없다가 갑자기 4위로 진입한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후순위에 있다가 3위로 순위가 급상승했던 김문수 경기지사도 분석 대상에 포함했다.

그 결과 여성 주자인 한 전 총리가 2위에 진입했을 때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가장 많이 빠졌다. 2010년 4월 셋째 주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3.1%였지만 1심 무죄 판결을 받은 한 전 총리가 2위에 진입하자 일주일 뒤 2.7%포인트(30.4%), 그 다음 주 5.9%포인트(27.2%) 각각 하락했다.

문 전 실장의 진입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에 약간의 타격을 줬다. 문 전 실장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올해 5월 넷째 주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3.1%에서 2.2%포인트(29.9%) 떨어졌다.

유 대표는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2009년 6월 첫째 주 바로 2위를 차지했다. 35.2%였던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5.2%포인트 하락했지만 그 다음 주 유 대표 등장 전보다 3.4%포인트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2009년 1월 반 총장의 2위 진입은 박 전 대표(42.2%→39.4%→40.0%)보다 당시 3위였던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13.3%→10.7%→9.1%)에게 더 많은 타격을 줬다. 손 대표의 ‘분당 당선’ 효과가 극대화됐던 4월 말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일시 하락했으나 다시 회복세(32.2%→30.0%→31.3%)를 보였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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