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첫 비핵화 양자회담]南 “비핵화 3단계 첫발 디뎌”… 北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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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2시 50분경(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의 국제회의장(BICC)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북핵 6자회담 참가국의 외교장관이 모두 참석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 국제회의장 바로 옆 웨스틴리조트호텔의 회의장으로 쓰이는 매그놀리아 룸. 한국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조현동 북핵외교기획단장, 기획단 관계자들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발리에 도착한 청와대 이도훈 대외전략비서관실 행정관도 모습을 드러냈다.

오후 3시 정각.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용호 외무성 부상이 차석대표인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등과 함께 나타났다. 위 본부장은 회의장 밖으로 나가 이 부상을 맞았다. 이 부상은 환하게 웃으며 회의장으로 들어왔다. 위 본부장은 이 부상의 손을 잡으며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사상 첫 남북 비핵화 회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위 본부장은 이 부상이 주영국 북한대사로 있던 2004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회의에서 이 부상을 만난 적이 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이 부상은 “반갑습니다. 영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1시간으로 예정됐던 회의는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회담 뒤 예정에 없던 두 수석대표의 약식 기자회견도 마련됐다. 두 사람은 “아주 생산적이고 유익한 대화”(위 본부장) “솔직하고 진지한 속에서”(이 부상)라는 표현을 사용해 분위기가 좋았음을 시사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회담이 한국이 추구하던 비핵화 3단계(남북 대화→북-미 대화→6자회담)의 중요한 일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담은 준비된 자료 없이 자유로운 토의 형식으로 진행됐으나 비핵화 이슈에 대한 양측의 견해차를 좁히지는 못했다. 한국은 6자회담 개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북한이 취해야 할 조처(핵실험 중단, 우라늄농축프로그램 중단 등)를 제기했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그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한 당국자는 전했다.

이 당국자는 “구체적 이슈에 대한 합의는 없었으나 북측도 회담에 아주 진지하게 임했고 스타일과 매너를 높이 평가한다”며 “남북이 이런 형태의 대화가 유용했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회담에서 북측은 ‘비핵화 이슈에서 남측을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은 ‘북핵 일괄타결(그랜드바겐)’에 대한 북한의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 당국자는 “북한 측이 그랜드바겐에 대해 우리 생각과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해소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정부가 올해 초 비핵화 회담을 제의한 뒤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5월 비밀접촉 폭로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후에도 정부는 뉴욕채널을 비롯한 여러 경로로 북한에 비핵화 회담을 제의했다. 계속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은 최근 접촉에서 ARF에서 회담에 응할 의사가 있음을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북한 대표단이 발리에 도착하기 직전에 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 전날인 21일 정부 당국자는 “이 부상이 최 부국장을 포함해 6명의 팀을 공식 대표단과 별도로 데려온다”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22일 오전 남북 실무자들은 발리 모처에서 만나 일정을 조율했다. 비슷한 시간 북한은 북-중, 북-러 양자회담에서 이 부상의 6자 수석대표 데뷔를 공식화했다. 남북은 오찬을 함께하며 최종적으로 회담 시간을 확정했다. 북측이 회담 시간과 장소가 미리 알려지면 회담을 무산시키겠다고 고집해 남측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회담장을 취재하려는 한국 기자들이 회담 장소를 사전에 알지 못한 채 외교부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였다.

발리=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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