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지원해봐야” 탈북자들이 전하는 北의 피폐상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7일 17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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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대국' 90%는 안믿어…김정은에 불신 팽배"
"식량 지원해봐야 '비상창고'로 들어갈 뿐"

"도대체 뭘 가지고 강성대국을 한다는 말입니까"

"화폐개혁 때문에 생계수단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7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베트남참전용사기념관. 제2하나원 착공식을 기념해 통일부가 마련한 '북한이탈주민(탈북자)과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탈북자 11명의 눈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남쪽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북한에서 교사, 장사꾼, 화가, 노동자, 학생이었던 이들은 생전 처음 접하는 기자간담회가 어색한 듯 기자들이 질문하기에 앞서 "여기서는 정부가 힘이 세냐, 언론이 힘이 세냐"고 묻기도 했다.

북한을 떠난 지 아직 1년이 채 안 된 이들은 북한의 피폐해진 사회상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탈북자들은 우선 남한 등 외부에서 지원되는 식량은 대부분 군용으로 전용되거나 국가안전보위부, 노동당 '일꾼'에게만 돌아간다고 전했다.

휴전선을 넘어왔다는 김 모 씨(20)는 "주민은 식량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어도 구경 못한다. 군부대 비상창고에 공급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탈북 동기에 대해서는 "집에서도 남한땅이 보이니까 남북 간 차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 막상 넘어오기까지는 마음먹은 지 3년이 걸렸다. 북쪽 휴전선에는 고압선, 지뢰밭 등이 설치돼 있어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고 했다.

북한에서 신발장사를 했다는 양 모 씨(45.여) 역시 "대한민국이 보내는 식량은 장마당에 왔다갔다 한다. 군이나 당 사람들, 일꾼 등에게로 가서 백성은 전혀 먹을 수가 없다"며 "보내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화폐개혁으로 어떻게 생활이 어려워졌는지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양씨는 "은행에서 800만원을 빌려 10만원을 가지고 장사를 했는데 화폐개혁 이후 10만원에 팔아야 할 신발을 500원에 팔아야 했다. 은행에서는 빚갚으라고 독촉했고 결국 집까지 뺐겼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화폐개혁은 주민들이 전혀 모르는 가운데 시행됐고 시행 이후에는 전화까지 차단했다"며 "화폐개혁에 대한 반감이 너무 크지만 서로가 믿지 못하니까 말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북한이 내년을 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선포한 것에 대해서도 믿지 않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선택된 김정은에 대해서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고 전했다.

태업 참가로 인한 처벌을 우려해 탈북했다는 노동자 김 모 씨(44)는 "북한에서 강성대국을 믿는 사람은 10%정도라고 본다. 실제로 해놓은 것이 없으니까"라며 "말은 못하지만 아는 사람들끼리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후계구도에 대해서도 "조선시대 군주제를 닮아간다고들 한다. 말하면 정치범으로 몰아가는 상황이어서 말을 못할 뿐"이라며 "해외생활을 많이 한, 고생도 못한 사람이 잘 할 수 있겠나. 주민들은 김정은이 해외에서 살았다는 것도 모른다. 단지 이름이 나왔으니까 후계자가 됐구나 하는 정도"라고 전했다.

'북한에서 한국드라마 등을 접하는 사람이 많나'는 물음에 이들은 "친구들 중에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한국에 가려는 사람은 많이 못 봤다" "연선(접경지역)이 아니면 정보는 접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한 여학생(18)은 "북에서는 성분이 중요하다. 내 아버지가 간부면 나도 간부가 된다. 아버지가 노동자라면 공부를 잘해도 어쩔 수 없다. 성분, 돈이 많으면 대학에 붙는다. 설령 실력으로 대학에 붙고 졸업해도 (성분이 나쁘면) 어쩔 수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꿈이 뭐냐'는 물음에 학생들은 외교관, 언론인, 연예인 등을 꼽았다.

한 여학생은 "엄마와 둘이서 탈북할 때는 남쪽에 이렇게 북한사람이 많은지 몰랐다"며 "앞으로 기자가 돼서 탈북자들의 성공한 이야기를 널리 알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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