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이후]中, 이번엔 ‘한국측 로드맵’ 편들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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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6자회담 조기재개” 후진타오 “관련국 관계개선”… 中 ‘남북대화 우선’ 언질 가능성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25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과거 중국이 주장했던 ‘북핵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언급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주장한다”고 말했으나 후 주석은 “(6자회담) 관련국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의 기치를 들고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며 서로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만 말했다.

최근 중국이 남북대화를 시작으로 북-미 대화와 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3단계 프로세스’에 동의한 것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들은 지난달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해 이 같은 회담 수순에 합의한 뒤 “앞으로 중국이 6자회담의 무조건 조기 재개 같은 얘기는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정부 당국자는 27일 “후 주석이 6자회담 조기 개최 얘기를 꺼내지 않은 점은 긍정적”이라며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한 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사후 설명(디브리핑)을 들었으나 중국 신화통신의 보도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으론 내심 6자회담의 조기 재개를 원하는 중국이 김 위원장의 주장 형식을 빌렸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중 친선우의와 경제시찰을 길게 전한 뒤 “6자회담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 정도로 6자회담 문제를 단 두 문장으로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줄곧 ‘성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관측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후 주석이 6자회담 재개 여건을 만들기 위한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김 위원장에게 전한 데 대한 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며 장애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대목은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신화통신과 조선중앙통신은 경제협력에 대한 북-중 양국의 시각차를 드러냈다. 신화통신은 경제협력이 ‘민생을 위한 것’이며 ‘국민을 행복하게 하길 희망한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해 전했지만 조선중앙통신에는 이런 표현이 없었다. 중국이 경제협력을 위해 중국을 초청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측 배석자들 중에는 경제통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북핵문제를 총괄했던 강석주 부총리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결과적으로 북-중 간 전략적 이해의 불일치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은 이를 축소하고 ‘우의’를 강조하기 위해 김 위원장이 가는 곳마다 중국의 고위급 인사가 동행하는 등 극진히 환대받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북-중 우호협력이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중국과의 불협화음이 대내적으로 알려지는 것은 북한 체제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남북 비핵화 회담에 명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당분간 미국 식량평가단의 행보와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움직임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7일 미국 국적의 전용수 목사를 석방했지만 이는 김 위원장 방중 결과라기보다는 식량평가단을 이끌고 방북한 로버트 킹 미국 북한인권특사에 대한 기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중이 정상회담에서 서로의 기대에 부합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만큼 남북관계는 현재의 경색 구도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양국이 정상회담 결과 보도에 나오지 않는 모종의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겉으로는 의견차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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