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 방탄용… 여야 ‘역주행 입법’ 의기투합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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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들 ‘당선무효 완화’ 왜

국회의원들의 ‘일방통행’이 가속화되고 있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 개정을 몰아가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의원들의 ‘역주행’의 근저에는 내년 4월로 다가온 19대 총선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나도 의원직을 내놓을 수 있다”는 동병상련의 위기감이 법의 서슬을 되도록 무디게 만들어 ‘안전판’을 확보하는 데 의기투합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군사작전 펴듯 기습 처리한 것이 단적이 예다.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금 쪼개기’를 사실상 허용하는 개정안에 여야가 일심동체가 된 것은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입법로비 수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현재 선거관리위원회가 ‘후원금 쪼개기’와 관련해 고발 또는 수사의뢰한 의원은 △KT링커스 관련 13명 △신협중앙회 관련 19명 △농협중앙회 관련 18명 등 모두 50명에 이른다. 청목회 사건으로 기소된 여야 의원 6명을 합해 전체 의원(296명)의 20%에 가까운 의원들이 후원금 문제에 발목을 잡혀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 김충환, 임동규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당선무효 규정 완화 법안’도 이 같은 압박감을 동력으로 삼고 있다. 당선무효형을 받는 국회의원이 꾸준히 늘고 있고, 죄질도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의원들 사이에선 법만 탓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1996년 실시된 15대 총선으로 당선무효 선고를 받은 의원은 6명이었다. 하지만 16대, 17,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이 숫자는 각각 10명, 11명, 15명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18대 국회에서 의원직을 상실한 15명의 형량을 보면 벌금형이 8명, 징역형(집행유예 포함)이 7명이다. 벌금형도 300만 원 이상이 7명이다. 현재 당선무효 규정(벌금형 100만 원 이상)이 엄격해 의원직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한 선거법 위반 건수도 △15대 총선 때 741건 △16대 3017건 △17대 6402건으로 매번 2배 이상씩 가파르게 늘었다. 18대 총선에서는 선거법 위반이 1945건으로 크게 줄었지만 선관위는 “2004년부터 선거법 위반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금품을 받는 유권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선관위는 유권자 4939명에게 40억 원에 이르는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나마 촘촘히 짜인 선거법이 금권선거 등 부정선거를 몰아내고 있다는 근거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4일 당선무효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나선 것도 아직은 선거법 정치자금법을 흐물흐물하게 할 때가 아니라는 국민 여론을 감안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실효성이 없고,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와 선거를 바라는 국민 의사에 반하는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국민 정서의 흐름에 청와대도 일부 공감한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까지 나서 정치권의 최근 움직임에 우려를 표시한 것은 그만큼 정치권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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