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스캔들’ 조사결과 발표]덩신밍 정체는?… 궁금증 못풀어준 합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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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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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브로커’ 단정짓기엔 中고위층 친분 미스터리

정부 합동조사단이 25일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에 대해 단순 ‘공직기강 해이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이번 발표는 사건의 핵심 인물인 덩신밍 씨의 정체나 주요 자료의 유출 경로, 금품 거래 유무 등 대부분의 의문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부실 조사라는 지적이 많다.

○ 덩 씨 정체 여전히 미스터리

합조단 발표에도 불구하고 덩 씨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합조단에 따르면 덩 씨는 비자 청탁 등을 목적으로 이미 알려진 H 전 영사 외에도 일부 영사와 현지 호텔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이 때문에 해당 영사들이 덩 씨에게 약점을 잡혀 비자 발급 등 덩 씨의 요청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덩 씨가 이권을 노린 단순 브로커라면 그동안 알려진 덩 씨와 중국 정부 고위인사들의 친분을 설명하기 어렵다. 김정기 전 총영사를 비롯해 덩 씨에게 업무 협조를 요청해 온 영사들은 덩 씨가 위정성(兪正聲) 상하이 당서기(부총리급·당 정치국 위원) 등 주요 정치인들과 환담을 하는 등 인맥이 상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중국 권력구조의 특성상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이 혼맥이나 혈연관계 없이 이들과 같은 고위층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덩 씨가 실제 재력가인지, 한국인 남편과는 정략결혼을 한 것인지 등 세간에 떠도는 의혹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 MB 선대위 명단 유출 경로 미궁

합조단이 상하이총영사관에서 유출된 것으로 밝힌 자료는 총 7종 19건. 이 중 이명박 대통령 등 우리 정부 관계자 및 정치인 연락처 명단의 유출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 전 총영사가 평소 관저에 보관해 온 해당 자료는 덩 씨의 카메라로 찍혀 유출된 것으로 판단되지만 유출 장소와 시점, 유출한 사람은 특정되지 않았다.

김 전 총영사는 그동안 누군가가 관저에 침입해 연락처 자료를 찍은 뒤 제자리에 다시 두고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이 연락처 원본을 갖고 있다며 기자들에게 제시까지 했다. 하지만 합조단 현지 조사 결과 연락처를 찍은 사진의 배경인 대리석은 김 전 총영사 관저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합조단 조사 결과대로 관저에서 찍은 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침입해 찍어갔다는 김 전 총영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부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관저에 침입해 몰래 빼낸 연락처 자료를 밖에서 찍은 뒤 다시 위험을 감수하며 관저까지 들어와 돌려줄 가능성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엑셀 파일 형태로 재작성된 주요 인사 206명의 명단 역시 공관에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 외에는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 없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해당 파일은 연락처 명단이 사진으로 찍힌 다음 날 덩 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한국인 민모 씨의 컴퓨터에서 제작됐다. 하지만 합조단은 민 씨의 관련성조차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금품 수수 의혹 여전

합조단에 따르면 덩 씨는 비자 발급 등 편의를 받고 이권을 챙기기 위해 영사관에 접근해 복수의 영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실제 덩 씨가 밀었던 중신은행 계열사인 중신국제여행사는 지난해 4월 기존 단체관광뿐 아니라 개별관광 비자 발급 보증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덩 씨가 영사들에게 부적절한 관계 외에 어떤 대가를 줬는지 이번 조사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합조단은 “금품수수 유무를 확인하지 못했다”고만 밝혔다. 이는 영사들의 기억에만 의존한 허술한 조사 때문으로 보인다. 합조단은 덩 씨의 부탁을 받고 내준 개인비자뿐만 아니라 중신은행 관련 건에도 영사들의 개입을 인정했지만 돈이 오간 부분은 더 파헤치지 않은 셈이다.

○ 김 전 총영사 사진 파일 의문투성이

사건이 불거진 직후 김 전 총영사는 “나를 음해하려는 일부 정보기관의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22일 덩 씨와 함께 밀레니엄 호텔 라운지에서 찍힌 사진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촬영 일시를 조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덩 씨가 수십 장의 사진 가운데 이 사진만 촬영일시를 조작했다고 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합조단은 이날 오전 2시 36분으로 기록된 촬영 시간에 대해 정황상 잘못됐을 수는 있으나 카메라 설정상 착오인지, 실제 누군가가 고의로 시간을 변경한 것인지는 판명해 내지 못했다.

시간뿐 아니라 지난해 12월이라는 시점도 의혹으로 남았다. 지난해 12월은 법무부 H 전 영사와 지식경제부 K 전 상무관이 덩 씨 문제로 조기 귀국한 지 불과 한 달이 지난 때라 지역에서 상당한 파문이 일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총영사는 “해당 사진은 덩 씨 스캔들이 불거지기 전인 9월에 찍었다”고 해명해 왔다.

법무부에 처음 의혹을 제보한 덩 씨의 한국인 남편 진모 씨(37)의 e메일 계정 도용 사건도 미제로 남았다. 10일 일부 언론사에는 진 씨의 e메일 주소로 ‘주요 인사 명단은 부인의 자료가 아니며 음모를 꾸민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전달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진 씨는 해당 내용이 기사화된 직후 “누군가가 내 e메일을 해킹해 보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누군가가 이 사건을 뒤집기 위해 진 씨 명의로 조작한 메일을 보낸 것이지만 합조단은 제보 과정에 다른 영사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그러나 합조단은 메일 조작 등 외부세력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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