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 드라이브’ 지켜보는 대기업과 중기, 그들의 속내는

  • Array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 대기업은 “기업은 정부에 영원한 乙아니냐 억울한 점 있지만 소나기 피하고 볼일”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정책 드라이브를 지켜보는 대기업 사이에서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반응만큼은 공통적이다. 이번 기회에 잘못된 관행이 남아있는 분야는 뭔가 대책을 세워 개선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모두 대기업 탓으로만 돌리는 분위기에 대해선 불만이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참여정부 때 중소기업 지원하라고 해서 현금으로 펑펑 퍼주다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곧바로 손을 뗀 기업도 있었다”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점을 우리는 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일단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대중소 상생의 최고 모범 사례로 꼽히는 대기업 관계자조차 “지금은 (기업이) 언급 안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정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할 말은 많지만 기업과 정부의 관계에서 기업은 영원한 을(乙) 아니냐. 괜한 소리를 하면 속칭 ‘개기는’ 걸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업종에 따른 반응은 제각각이다. 주로 대기업끼리 거래하거나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계열사가 많은 그룹들은 일단 ‘남의 얘기’라는 반응이다. 협력업체가 거의 없는 A사 관계자는 “대기업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것이 억울하긴 하지만 나서서 말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자체 설비에서 부품생산을 전담하는 B사의 계열사 관계자도 “뭔가 대책을 내놓으라는 분위기인데 (협력업체가 없으니) 만들 것도 없다”며 난감해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모기업이 핵심 기술을 갖고 협력업체를 종속적으로 둘 수 있는 업종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모기업과 협력업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안전과 직결된 업종은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중시해 왔다”고 말했다.

반면 불공정 거래가 여전한 것으로 지목되는 건설이나 유통, 전자 분야 계열사를 둔 대기업들은 된서리를 맞을까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건설 관련 계열사를 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 바닥이 아직 구두발주나 어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끼리도 어느 회사가 양아치처럼 구는지, 누가 협력업체 쪼아서 고속 승진하는지 훤히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제대로 조사하고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서 그런 업체는 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 정부에 대한 불만도 끓고 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정부 관계자들이 현실을 제대로 알고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 대기업 임원은 “솔직히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얘기를 들으면서 좀 실망했다”면서 “‘대기업이 수십조 원 갖고 있으면서 중소기업에 어음 결제하는 건 탐욕’이라고 했는데, 실태 조사도 안 하고 옛날 노래 부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 중에서도 우리처럼 수출과 거리가 먼 회사들은 경기 회복세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 간 격차는 따져보지도 않고 상생하라고 몰아붙이면 우리를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기업이 현금을 많이 들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어느 정도는 현금을 들고 있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중소기업은 “일진이 때렸다고 선생님께 이르더냐 불공정 신고? 문닫을 각오해야”


대통령이 중소기업 편들어주니까 기분은 후련하고 위로가 되기는 하는데….”

2일 본보와 통화한 중소기업 사장 대부분은 최근 정부의 잇단 대·중소기업 상생강조에 대해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들이 현실과 동떨어져 큰 효과가 없었는데 이번이라고 다르겠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 “큰 기대 안 한다” 냉소도


대기업 건설업체에서 배관 공사를 하청 받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 관행을 개선한다면서 사례를 신고하라는 게 일부 공무원의 의식 수준”이라며 “‘일진’에게 맞은 학생이 피해사실을 선생님에게 알리는 거 봤나”라고 코웃음 쳤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갖는 고발권을 조합이나 중소기업중앙회 등 제3자도 갖게 하자는 지식경제부 방안에 대해서도 “누가 대신 고발해준다고 해도 협력업체가 문 닫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외장재를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우리가 아니라도 솔직히 그 회사에 납품하겠다는 회사들이 진을 치고 있다”며 “사업 그만하겠다는 각오 아니면 찍소리도 못한다. 신고는 꿈도 못 꿀 일”이라고 설명했다.

철강업계의 한 협력업체 A 사장은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하는 정책이나 법을 만든다고 하다가 대기업 로비에 막히는 걸 여러 번 봤다”며 “납품단가 문제만 해도 대기업의 논리에 밀려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단가 조정협의는 무의미하며, 누군가가 신고하면 관련 기관이 조사를 벌이는 식으로 불공정거래를 적발한다는 것도 실효성이 없다”며 “검찰이 인지수사를 하듯 불공정거래 관행을 조사하게 하면 안 되나”라고 덧붙였다.

○ “문화 자체를 바꿔 달라”

중소기업인들은 정부가 대·중소기업 불공정거래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으려면 단기 처방성 대책이 아닌 산업계 문화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라스틱 업체를 운영하는 B 사장은 “대기업 사장이나 구매 담당 임원이 중소기업 사장과 머리를 맞대게 하는 걸로는 상생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대기업 총수들의 생각 자체가 변해야 하고, 이건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금속업계 C 사장도 “법이나 제도로 대기업을 압박해도 한계가 있고 개선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중소기업을 ‘후려치는’ 대기업이 스스로 창피스러워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중소기업 대표는 이번 사태가 자칫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집단 반발하는 모양새로 보이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30일 업종 대표 10여 명이 대·중소기업 공정거래 질서 정착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준비했다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취소하기도 했다. 몇몇 중소기업 사장은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예민해진다”며 취재를 거절하거나 업체나 자신의 이름을 독자들이 추측할 수 없도록 익명으로 써 달라고 요구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