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측대응 지켜보다 타이밍 고른듯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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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개입설 부인 왜 나섰나

천안함 공격여부 안 밝힌채 南 의혹 제기에 “날조” 주장
“유감스런 불상사” 이례적 언급

83년 아웅산폭발 사건 등 과거에도 발뺌선전 전력
‘내부불만 억제카드’ 활용도


천안함 침몰 사건 개입 의혹이 커지자 북한이 17일 ‘부인 카드’를 들고 나왔다. 물론 북한이 이번 사건에 실제로 개입했다는 증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과거 자신들의 소행임이 입증된 테러사건들에 대해서도 사건 초기에 개입설을 부인하고 이를 내부 불만 억제에 활용하려는 패턴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번 북한 측 주장은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측 대응 지켜보다 ‘타이밍’ 고른 듯


북한이 사건 발생 22일 만에 마침내 입을 연 것은 14일과 16일의 상황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14일(현지 시간) “6자회담 재개 노력보다 천안함 사건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고 발언한 데 이어 15일 천안함 함미 인양으로 사건 원인이 ‘외부의 충격’ 및 ‘어뢰 공격’ 가능성 쪽으로 기울어졌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16일 이번 사건을 ‘국가안보 차원의 중대 사태’로 규정했다.

북한은 이런 흐름을 자신들에 대한 여론몰이라고 주장했다. 논평원의 글은 “남측 정부가 초기 입장에서 갑자기 돌변하여 노골적으로 우리를 걸고 들고 있다”며 “역적패당이 허황하기 짝이 없는 ‘북 관련설’의 도수를 점점 더 높이면서 침몰 원인을 날조하여 그 무슨 ‘응징’과 ‘단호한 행동’ ‘국제사회를 통한 새로운 제재’까지 모의하고 있는 조건에서 음모의 속내를 까밝히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논평원은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역적패당의 가소로운 처사를 두고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실종자 수색과 원인 규명을 위한 증거 수집에 전념하며 북한 개입 의혹에 대해 냉정함을 유지하자 처음엔 ‘공연히 부인할 경우 개입 의혹을 부채질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태 관찰하다 내부 활용 결정


A4용지 4쪽 분량인 논평원의 글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북 관련설’이 ‘날조’돼 ‘유포’되고 있음을 주장하면서도 자신들이 천안함을 공격하지 않았다는 명시적인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 개입이 사실일 경우를 가정할 때 ‘북한이 나중에라도 진상이 드러났을 때를 대비해 표현을 조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논평원의 글은 그 대신 남한 당국이 △6·2지방선거에 활용하고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책임을 모면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분위기를 지속해 자신들을 압박하기 위해 ‘북 관련설’을 만들어 유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 내용을 주민용 방송에서 공개해 지난해 11월 30일 단행된 화폐개혁과 외환통제 실패에 따른 내부 불안 단속에 활용키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과거에도 ‘일단 부인’ 관례

북한은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기 폭발 테러 사건을 일으킨 뒤 6일 만인 12월 5일 ‘중앙통신사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북한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자신들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자 1988년 2월 16일에도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강변했다.

북한은 또 1983년 10월 9일 발생한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3일 뒤인 12일 ‘중앙통신사 성명’을 통해 발뺌선전을 했다. 2년 뒤인 1985년 9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남한에 내려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협상을 한 허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2년 전 사건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만약 북한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다면 그것으로 회담은 끝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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