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의원님들, 국민이 원하는 국감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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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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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채택 싸움 ‘정운찬 국감’
정쟁-파행 올해도 되풀이
초선의원 “죄송한 마음뿐”

“한마디로 지리멸렬했다. 이런 국정감사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올해 국감이 사실상 끝난 23일 오후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감을 준비하며 날밤을 새우기 일쑤였던 지난 몇 개월을 되돌아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국감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매년 9월 10일부터 20일 동안 국감을 실시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 간 대결구도가 먹구름을 드리웠다. 한나라당의 미디어관계법 처리에 항의해 7월 말부터 한 달 넘게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이 8월 말 전격 등원을 선언했지만 국감 준비는 차질이 불가피했다.

가까스로 국감은 10월 5일부터 시작됐지만 그나마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상임위마다 국감의 본질과는 무관한 증인 채택 문제 등으로 파행을 거듭했다.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대표적 경우였다. 교과위에서는 교육이나 과학정책과는 무관한 정운찬 국무총리의 증인 채택 문제가 최대 쟁점이었다. 국회의 임명동의 뒤 임명장을 받은 정 총리는 전직 서울대 총장일 뿐 교과위의 국감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 교과위원들은 교육과학기술부(7일)와 경기도교육청(8일), 서울시교육청(9일), 사립학교교직원연금관리공단(12일), 서울대(21일) 등을 상대로 한 국감 때마다 정 총리의 증인 채택을 계속 요구했다. 한나라당이 반대하자 야당이 반발해 교과위 국감은 5차례나 파행을 겪었다. 국토해양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4대강 사업,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가 말싸움을 거듭했다. 의원들 사이에서 ‘조폭 집단’, ‘양아치’, ‘졸개’ 등 막말이 오가기도 했다.

11년째 국감을 지켜본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의 홍금애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야당의 준비 부족으로 국민이 바라는 질의를 제대로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야당 의원이 국감의 근본적인 문제인 피감기관의 업무와 재정 집행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대신 환노위에서는 4대강 문제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효성 부실 수사만 얘기했다”고 꼬집었다.

일부 한나라당 의원은 오히려 피감기관장을 두둔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이날 국감을 마무리하는 자료집을 내면서 “4대강과 세종시를 둘러싼 소모적인 정쟁이 국정감사 기간 내내 화두였다. 올해에는 달라진 국감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라고 반성문을 썼다.

여야는 국감 기간 중 시작된 10·28 재·보궐선거에 모든 승부를 걸었다. 선거 초반에는 각 당 지도부만 선거 현장을 누볐으나 선거전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여야 의원들이 대거 선거 현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여야가 대정부 감시라는 국감 본연의 취지에 충실하지 못하자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한 부처 공무원은 “어차피 국감이 진행되는 하루 이틀 정도만 버티면 끝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회의장 직속 국회제도운영개선자문위원회는 올해 초 상임위별 상시 국감의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국회는 10개월 동안 이 개선안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정원수 정치부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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