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北정권, 민족 감동시켜야 산다

  • 입력 2009년 9월 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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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월 3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억류 중인 두 명의 여기자를 석방하는 데 동의한 후 한 달간 국제사회에 줄곧 ‘미소외교’를 폈다.

16일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 만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조문외교를 할 때 우리는 과거에 잘 보지 못했던 북한 정권의 유연한 자세를 보았다. 북한은 2008년 12월 이후 중단된 남북 간 육로 교통 재개, 이산가족 상봉 재개, 억류 중이던 현대아산 직원 석방은 물론 북한 정권이 ‘악독하다’고 했던 이명박 정부와 타협 자세를 보였다. 이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먼저 주도적으로 선의를 보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기남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이 대통령을 면담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올해 2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한 메시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 즉 남북 간 긴장이 완화되기 전에는 북-미 간에도 실질적인 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양자회담으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북한은 스스로 핵을 폐기하기 전에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북한에 실질적인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북한은 이번 미소외교를 통해 유엔결의 1874호 등으로 초래된 고립 상황에서 한숨 돌릴 수도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런 북한의 ‘숨 돌리기’ 전략에는 서울과의 관계 개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북한이 한국 정부를 압박해 타협을 이끌어내려는 카드는 7월 이전에 소멸됐다. 북한은 한국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하는 것도 전쟁이며 한미 간 을지훈련을 시행하는 것을 두고도 북한의 군사경비 태세를 높이자고 외쳤다. 개성공단의 임대료와 북한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북한이 ‘속빈 강정’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과거 햇볕정책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한국 정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비료 식량 등 원조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으로부터의 현금도 날아가 버렸다.

김 위원장은 주도적으로 한국에 호의를 표시해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 단순히 위협과 도발만 해서는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이 북한과 서로 교류하는 것을 원치 않게 하는 사태만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안다. 평양정권은 김정일 일가의 통치 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소외교는 김정일 정권이 원칙이나 명분을 내세우기보다는 실리와 이익을 좇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김 위원장이 한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손에 쥔 패 중 하나는 핵무기이지만 또 하나는 민족주의 또는 민족감정이다. 북한이 민족감정이라는 패를 잘 쓰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한국인들의 북한 왕래와 여행 및 양측 민간인들의 교류와 왕래가 있어야 한다. 양측 간 사회적인 교류의 대문이 열리는 데 평양이 얼마나 동의하느냐가 평양의 민족감정을 활용한 정책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반도의 미래와 평화 번영의 본질적 동력은 남북한 국민 간의 민족감정과 민족 간 유대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김 위원장이 ‘숨 돌리기’만을 위해서 민족감정을 이용하려 한다면 남북 긴장 완화와 교류에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주펑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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