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해소가 국가경쟁력… 갈등 10% 줄면 1인당 GDP 7.1%↑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OECD국 4번째로 갈등 심해… “정치가 먼저 변해야”
‘87년 민주화’ 기점으로 묵었던 갈등 동시다발 폭발

■ 사회갈등의 경제학

전문가들은 1987년 6월항쟁이 군사독재 하에 억눌려 있던 민주화 요구가 분출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지역 이념 계층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사회 갈등이 노골적으로 심화되기 시작한 기점이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난 자리 뒤로 그동안 심화된 사회적 갈등의 해소가 큰 과제로 남은 것이다.

○ 국가 경쟁력까지 뒤흔드는 갈등

삼성경제연구소가 올 6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 갈등과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각종 사회 갈등이 제도 안에서 원만하게 관리되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표출되면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사회갈등이 심한 것으로 분석했다. 소득불균형은 OECD 평균 수준이었지만 민주주의 성숙도가 최하위이고 정부의 효율성(23위)도 하위권이었기 때문에 갈등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타협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반대집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고 법질서에 대한 존중 의식이 낮으며 정당체계가 불안정한 것이 민주주의 지수가 낮게 나온 원인이었다.

실제 1987년 대선 이후 각종 선거는 지역 갈등을 심화시킨 구조적 요인이었다. 해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노사 분규는 계층 갈등의 단면이었다. 급기야 2002년 미군 장갑차가 여중생 2명을 숨지게 한 ‘효선·미순 양 사건’으로 인해 반미감정이 극심해지면서 이념 갈등 현상까지 나타났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형 국책 사업에 대한 이해 당사자들과 관련 시민단체들의 집단행동도 끊이지 않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사회갈등 지수를 10% 낮출 경우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7.1% 높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회적 갈등이 사회적 불안정을 가져올 뿐 아니라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 이념, 지역 갈등 ‘중첩’으로 갈등 심화

동아일보 후원으로 한국 정치학회와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가 올 6월 개최한 ‘사회갈등 해소와 국민통합’ 특별 학술회의에서 김형준 명지대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최근 이념적 중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오히려 이념 갈등은 증폭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자신이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늘고 있지만 개별 정책 이슈에 대해서는 분명한 이념적인 성향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역과 이념의 갈등과 대립이 중첩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념과 상관없이 호남 지역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대북지원과 같은 햇볕정책에 찬성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대구 경북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또 진보와 보수 간의 배타적 감정이 이념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와 보수가 특정 이슈와 정책을 놓고 경쟁하고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감정에 의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보’ 자체에 대해서 ‘좋다’는 긍정적인 감정과 느낌을 갖고 있지만 보수에 대해서는 ‘나쁘다’고 느끼는 배타적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 정치권이 갈등의 진원지

목포대 김영태 교수(정치학)에 따르면 1987년 이후 2007년의 17대 대선과 2008년의 18대 총선 이르기까지 한국의 선거는 지역주의 투표로 점철되어 왔다.

올해 5월 동아일보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자신의 지역과 일체감이 높을수록, 또 자기 지역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정당이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일수록 지역주의 투표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현재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정치적 동원 등에 따른 반복적인 정당지지의 결과가 정치심리적인 정당일체감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라며 “지역주의 투표 현상은 궁극적으로 지역주의적 정당구조의 해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갈등의 조정 역할을 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스위스 소수파 정치적으로 포용…공존 기틀 마련

이탈리아 노동개혁 대립끝에 좌초 ‘경제활력’ 잃어

■ 갈등관리 외국 사례

우리나라와 역사적 구조적 배경이 달라 평면 비교하긴 어렵지만 해외 여러 나라도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선진국들은 갈등 관리에 성공해 국가적 도약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둔 반면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국가들은 경제적 성공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올 6월에 내놓은 ‘해외 갈등관리 사례 연구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잘 드러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는 종교와 언어의 차이를 극복한 대표적인 선진국으로 꼽힌다. 스위스는 19세기 말 연방정부가 추진한 산업정책들이 사회갈등으로 인해 좌초될 위기에 몰렸지만 소수파를 연방정부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갈등을 풀어나갔다. 이후 스위스는 소수파에게 연방평의회 일정 의석을 보장하는 전통을 이어오면서 다수파와 소수파가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고 경제도 크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반면 좌우 이념 갈등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종교 및 인종 갈등을 겪고 있는 터키는 상대에 대한 관용과 배려 부족으로 개혁 실패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탈리아는 1947∼1978년에 31번이나 정권이 교체되는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특히 1970년에는 ‘노동자법’ 처리 문제를 놓고 좌우가 극렬하게 대립했고, 2001년에 집권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사회적 합의 없이 노동개혁법을 강행 처리해 반정부집단이 테러를 감행하는 등 사회적 갈등이 폭발하기도 했다. 결국 노동개혁은 좌초됐고 경제는 활력을 되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정교(政敎)분리의 원칙이 확립되지 않은 터키는 세속주의파인 아메트 세제르 대통령과 이슬람파 뷜렌트 에제비트 총리 사이의 갈등이 노골화되면서 사회적 갈등도 폭발했다. 1998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통해 구조개혁을 추진했지만 극렬한 사회적 대립으로 개혁이 좌초되고 경제도 최악의 상황으로 몰렸다.

터키는 또 1984∼1999년 쿠르드 반군세력과 전쟁을 벌였고 쿠르드족을 소수인종으로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다가 서유럽 국가들의 반대로 유럽연합(EU) 가입마저 거부되기도 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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