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산상봉 논의’ 北에 先제의할 듯

  • 입력 2009년 8월 19일 02시 56분


분주한 현대아산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해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이른 시일 내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것에 합의함에 따라 18일 현대아산 본사 직원들이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비한 사업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홍진환 기자
분주한 현대아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방북해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이른 시일 내에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것에 합의함에 따라 18일 현대아산 본사 직원들이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비한 사업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홍진환 기자
■ 현대-北 ‘5개항 합의’ 이후
적십자채널-軍통신망 통해 주내 제안 방침
“北사과 없이 대화하나” 보수진영 비판 부담

정부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현대그룹과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가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을 우선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를 북한에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남북 회담 성사 후 행사 때까지 실무적으로 2개월가량 걸리기 때문에 추석(10월 3일) 행사를 개최하려면 물리적으로 이번 주 안에 북한에 회담을 제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 등 나머지 4개항의 실천을 논의할 남북 당국 간 회담도 북측에 제의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진영과 정부 일각에선 이 같은 정부의 회담 재개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이산가족 상봉 우선 제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17일 오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대화 내용 등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장관은 이를 토대로 정부 내 협의를 거친 뒤 조만간 북한과의 협상 개최 시기와 방법 등을 결정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동해선 군 통신선과 해사(海事) 당국 간 통신망을 통해 적십자회담을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북측이 판문점을 통한 남북 적십자 간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기 때문이다. 방송 등 언론을 통해 회담을 공개 제의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과거에도 유일한 채널인 남북 직통 전화가 잘되지 않을 때 방송을 통해 회담 제의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담당하는 대한적십자사도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 대한적십자사 김영철 사무총장은 “2007년 10월 16차 이산가족 상봉 이후 행사가 중단됐지만 적십자회담이 시작되면 곧바로 상봉 행사를 열 수 있도록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2007년 11월 9차 적십자회담에서 남북은 매년 각각 400명의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1985년 이후 당국 간 상봉 행사를 통해 만난 이산가족은 총 1만6369명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북측의 요구를 충분히 검토하고 국내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회담 제의 시기를 차분히 결정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있다. 북한의 의도를 분석하고 나름의 방침을 확정한 뒤 제의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27일까지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진행되는 점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 보수 진영의 비판 여론도 고심

정부는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수 진영은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이번 당국 간 회담에 대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비판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룬 가운데 북측과의 협상에 나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비판적 시각은 대략 세 가지다.

첫 번째로 “6·15공동선언 및 10·4정상선언을 이행하라”는 북한의 주장에 정부가 동조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있다. 북한은 현대그룹과 아태평화위의 공동보도문에서도 이 주장을 되풀이했다. 정부가 5개항의 이행을 받아들이는 것은 간접적으로 북한의 압박에 손을 든 형국이라는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두 선언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공식 폐기 선언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정부 내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마저 있다.

두 번째로 북한이 올해 5월 2차 핵실험을 하는 등 중대한 ‘사정변경’이 있었는데도 정부가 금강산과 개성 사업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비판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도 이날 온라인 보고서를 통해 “(최근 북한의 변화는)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바탕 위에서 보다 주도적인 대남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며 “대북 관광사업이 재개되더라도 현금 지불 방식 대신 현물 등 다른 방식의 관광 대가 지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북한이 지난해 이후 일관되게 벌여온 대남 공세에 대한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상태에서 대화에 응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특히 북한은 올해 1월 남북 전면대결을 전제로 한 대남 군사조치 3개항을 발표하고 기존 남북 간 정치 군사적 합의를 전면 무효화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 북한이 돌연 태도를 바꿔 대화를 요구하는 데 응해 남측이 곧바로 대화에 나서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 같은 비판론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깊어가는 가운데 북한이 억류한 ‘800연안호’ 선원 4명을 조기 석방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대규모 조문단을 파견할 경우 자칫 극심한 남남(南南)갈등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연안호 선원을 조기에 석방하겠다’고 언급했다고 들었다”며 “북측도 남측이 UFG를 진행하고 있어 시기를 조율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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