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숨겨진 코드’로 보도문 행간 읽어보니…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와 현대그룹이 17일 발표한 공동보도문에는 양측 간 합의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남측에 보내고 싶은 메시지로 추정할 수 있는 힌트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향후 대남 전략도 엿보인다. 보도문 속의 단어와 구절, 배열 순서 등에 숨은 7개의 코드를 찾아 그 의미를 살펴봤다.

[1] “아태평화위와 현대그룹 사이”
첫문장은 김정일… ‘현대 시혜대상’ 강조

보도문은 불평등하다. 제목부터 아태평화위가 먼저 나오고 현대그룹이 뒤에 나온다. 첫 문장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는’으로 시작한다. 형식상 현대그룹은 남북경협에서 아태평화위와 동등한 파트너지만 보도문에서는 김 위원장의 시혜를 받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남북은 2000년 정상회담 당시에는 이런 문제를 고려해 각각 양측 정상을 앞세운 합의문 2부를 작성했다.

[2] “공동보도문”
北, 민간 아닌 당국차원 합의 암시

남북이 장관급회담 등 당국 간 회담 결과를 발표할 때 자주 사용하던 문구다. 이번 합의가 민간과의 합의가 아닌 당국 간 차원의 합의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현 회장이 남한 정부와의 조율 아래 합의한 것이라고 규정한 뒤 문제가 발생하면 남측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보도문’은 언론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북측이 외부 언론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다음과 같이 실행할 것이다. 1. 2. 3. 4. 5”
南승인없이 당장 실행할 것처럼 선언

북한은 합의사항들을 마치 남한 당국과의 추가 합의 없이 당장 실행할 것처럼 선언했다. 5개 합의사항의 배열 순서도 흥미롭다. 북한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2번뿐이고 1, 3, 4번은 남한 정부가 승인해야 한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을 마지막에 놓고 남측이 1, 3, 4번을 이행하는 것에 대한 조건부 ‘선물’임을 내비쳤다.

[4] “현 회장의 청원을 모두 풀어주시였다”
北 이득 숨기고 ‘통 큰 결단’ 강조

이번 합의는 현 회장과 남측 정부가 바라는 것을 김 위원장이 ‘통 크게’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 이번 합의가 실현될 경우 가장 이익을 보는 측은 북한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 관광 등을 통해 막대한 관광 수입을 얻을 수 있고 개성공단 물동량이 늘어나면 근로자 임금 수입도 늘어난다. 북한은 이런 속내를 숨기고 싶은 듯하다.

[5] “김 위원장께서 취해주신 특별조치에 따라”
‘김정일 말이 법’… 특별지시 대대적 홍보

김 위원장의 즉석 구두 지시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해 보도문은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이 철저히 보장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말은 곧 법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인 여기자 2명도 특별사면 형식으로 석방했다. 김 위원장의 ‘특별 지시’를 홍보함으로써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 등을 피해가려는 듯하다.

[6] “10·4선언 정신에 따라 원상대로 회복하기로”
우리도 했으니 南도 선물 내놔라?

보도문은 6·15 남북 공동선언을 한 차례, 10·4정상선언을 두 차례 명시했다. 북한은 “10·4선언은 6·15선언의 실천 강령”이라며 남한 정부에 이행을 요구해 왔다. 북한에 10·4선언이 중요한 것은 남측이 북한에 제시한 ‘선물 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북측은 거꾸로 선심을 쓰는 것처럼 생색을 내며 ‘우리도 했으니 남측도 이행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7]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우리끼리’ 강조… 南에 민족정서 호소

김 위원장이 1990년대 후반부터 활용해 온 ‘우리 민족끼리’의 대남 전략에 호소한 대목이다. ‘우리’와 ‘민족’이라는 단어를 통해 남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강조하고 남한의 민족정서에 호소했다. 남한 내부에 북한에 동정적인 여론을 조성해 정부를 압박하고 남남갈등을 조성하려는 선전선동의 노력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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