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南北교류협력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와 합의한 ‘공동보도문’이라는 문건을 들고 어제 평양에서 돌아왔다. 문건은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 올 추석 이산가족 금강산 상봉 등 5가지 합의를 담고 있다. 기업대표가 정부의 대북(對北) 국가사업을 북측과 논의한 뒤 약속을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다. 통일부는 “민간 차원의 합의”라면서 “합의가 실현되려면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통한 구체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해명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목을 매고 있는 현대그룹에 이렇게 중대한 일을 맡겨놓았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금강산 및 개성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이 중단된 것은 모두 북한 책임이다. 북한군이 지난해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를 사살한 뒤 우리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 이산가족 상봉도 북한이 2007년 11월 이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려면 남북 당국 간 합의가 필수적이다. 민간인 사살에 대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관광객 신변안전 보장 없이 금강산 관광 재개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현 회장이 정부 특사라도 되는 양 북측과 합의를 했다. 남북 교류협력은 내용 못지않게 형식이 중요하다. 기업인이 북한과 한 약속을 정부가 덥석 넘겨받는 형식은 문제가 있다. 이번 합의에 대해 북한이 수천만 달러의 관광대금을 포함한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정부의 대화 제의는 거부하면서 민간과 접촉하는 통민봉관(通民封官) 전술을 동원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북한의 속셈도 모른 채 남북관계를 적당히 봉합하면 반드시 후유증을 겪게 된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로 남북관계를 냉각시킨 북한의 대남(對南)도발 전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 회장을 방북 7일 만에, 그것도 묘향산으로 불러 만났다. 김 위원장의 처신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현 회장의 모든 청원을 풀어주었다”, “김 위원장의 특별조치에 따라 모든 편의와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고 선전공세를 폈다. 외부 세계에 비치는 김 위원장은 외교와 협상의 기본도 모르는 시대에 뒤떨어진 독재자일 뿐이다.

정부는 대북 접촉에서 나라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이 당국 간 대화에 나와 구체적 합의를 한 뒤에 재개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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