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드라마 끝나자 美 첫마디는 “변한 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7일 02시 59분



“클린턴 방북은 인도적 임무
핵개발 포기해야 관계개선”
오바마, 분리대응원칙 확인


눈물샘을 자극한 귀환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내놓은 일성(一聲)은 “변한 건 없다. 상황은 여전히 엄중하다”였다. 빌 클린턴이란 거물이 주연한 ‘여기자 구출 드라마’가 자칫 수개월간 공들여 쌓아온 대북 제재 공동전선을 흐트러뜨리고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걸 염려라도 하는 듯 원칙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다.
오바마 대통령(사진)은 5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번 방북이 인도적 임무임을 매우 명확히 해왔다”며 “그동안 북한에 관계 개선의 길이 있음을 말해왔다. (그것은) 더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도발적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같은 방송에서 ‘이번 방북이 북핵 문제의 전기로 이어질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이번 방북의 목적이 아니었다. 분명히 이번 방북은 우리가 기대할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통한 소식통은 “여기자 석방 특사 파견이 논의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중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이전부터인데 그때부터 오늘까지 오바마 정부의 방침은 일관됐다”고 말했다. ‘도발→보상’의 악순환에 대한 학습효과와 더불어 제재 시스템이 확실히 가동되고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다.
하지만 불통(不通) 상태가 이어져 온 북-미 관계에 머지않아 변화가 올 가능성은 열려 있다. 비단 이번 방북 때문이 아니라 최근 북한 지도부 내에서 변화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도발→도발→대화→도발(打-打-談-打)’이라는 북한의 행동 사이클이 담(談)의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워싱턴은 보고 있다.
우선 관심의 초점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곧 풀어놓을 (방북 보고) 보따리다. 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 한국, 일본 납북자 문제를 비롯해 많은 주제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이 클린턴 전 대통령 임기 말 성사 직전까지 갔던 북-미 정상회담을 오바마 대통령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몸짓 큰 제스처만으로는 오바마 대통령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백악관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은 말한다. 수개월에 걸친 도발·적대정책을 끝내겠다는 진심이 담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당신이 주먹을 편다면 나도 손을 내밀겠다”는 다짐대로 적극 화답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 이슈를 다룰 고위급 직접 접촉을 허용할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이미 약속한 것을 뒤늦게 이행하는 대가로 보상하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는 미 관리들의 설명이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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