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 국회법 이젠 손봐야”

  • 입력 2009년 8월 4일 02시 59분


법안상정-표결 절차 해석 제각각… 정쟁 불러
사무처도 개입 주저… “명확한 의사규칙 절실”

“방송법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부결이다.”(민주당)

“부결 아닌 불성립. 재투표 문제없다.”(한나라당)

3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난달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미디어관계법의 법적 효력을 두고 2주째 싸움을 계속했다.

민주당은 ‘부결된 안건을 같은 회기에 다시 제출할 수 없다’는 국회법 92조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을 들어 방송법 무효를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첫 방송법 표결은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표결이 성립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투표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요즘 국회는 여야 법리 공방의 장(場)으로 바뀌었다. 쟁점은 국회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 “(상대당이) 국회법을 제멋대로 해석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국회법에는 어떤 경우 부결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같은 국회법 규정을 놓고 여야는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회법 해석 차이가 국회 파행으로 치달은 사례는 미디어법을 둘러싼 분쟁만이 아니었다.

○ 반복되는 국회법 해석 논란

지난달 1일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이 위원장 직무대리를 선언하고 비정규직 관련법 등 미상정 법안을 일괄 상정한 것이 논란이 됐다. 국회법 50조 5항은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거부·기피할 때에는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미애 환노위원장은 “수석전문위원에게 ‘회의를 준비하라’고 말했다”며 “의사진행을 거부하거나 기피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월 25일에는 고흥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미디어법 등 22개 법안을 상정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려 미디어법을 기습 상정했다. 즉각 22개 법안에 대한 심의가 의사일정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점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법안 명칭도 밝히지 않는 등 국회법에 따른 의사일정 변경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원천무효를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고 위원장이 이전 회의에서 ‘미디어 관련 22개 법을 미디어법이라고 한다’고 했기 때문에 직권상정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 밖에도 ‘국무위원의 국회 출석요구 절차’ ‘국회가택권의 행사’ 등을 두고도 국회법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 “구체적인 국회 의사규칙 있어야”

국회법 조항을 두고 여야가 논란을 벌이는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유권 해석을 꺼리고 있다. 정치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여야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 손을 들어줬을 때 쏟아질 비난을 감당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해석이 모호한 국회법 조항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종후 의사국장은 “국회법 조항이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의사 과정을 관행에 따르는 경우가 많아 정치권에 논란이 자주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회 운영 전반에 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한 의사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회의장 직속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는 6월 의사규칙 권고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 권고안에 따르면 의사일정을 작성할 때 개회요구 일시와 이유를 적도록 하고 위원장은 개회요구서에 기재된 안건을 간사와 협의해 상정하도록 해 미디어법 직권상정과 같은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또 지난 임시국회에서 환노위가 두 차례 개의돼 논란이 있었던 사례 등을 감안해 그동안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온 ‘1일 1차례 회의 원칙’을 권고안에 명문화했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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