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아리랑공연 집착 왜?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8분


①세습 정당화 ② 외화벌이 ③ 사회통제
■ 정치-경제-사회학적 분석
체제 선전장… 올해 공연 김정운 띄우기 가능성
무기-마약 밀매 막히자 주요 달러벌이 무대 활용
육체적 고통 통해 주체사상 효과적 주입하기도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과 국제사회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이달 10일부터 대규모 아리랑공연을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아리랑공연이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현실이 응축된 복잡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아리랑공연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자 세습 찬양, 해외 관람객 유치를 통한 외화 벌이, 북한 주민에 대한 주체사상 훈육이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목적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 부자 세습 정당화의 정치학

2002년 4월 김 주석의 90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아리랑공연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 등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퍼포먼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김 주석이 1994년 사망한 뒤 ‘고난을 극복하고 선군정치를 내세운’ 김 위원장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부자 세습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이 2000년대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면서 1990년대의 극심한 경제난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해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아리랑공연은 9월 17일 끝나는 ‘150일 전투의 성공’을 선전하는 의미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올해 아리랑공연에는 김정일의 3남 김정운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구도를 찬양하고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 배경을 상징하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외화 벌이 수단의 경제학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아리랑공연은 2002∼2008년 6만여 명의 해외 관광객이 관람해 이들에게서 약 1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북한은 올해도 중국과 미국 등지의 여행사 홈페이지를 통해 아리랑공연 관람객을 모집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의 아리랑공연에 외화 벌이라는 경제적 목적이 더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해외 원조나 차관,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등 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북한의 노력이 모두 실패한 점을 들어 외화 벌이 수단이 된 아리랑공연의 경제적 목적을 설명한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은 2000년대 들어 무기 수출과 마약 밀매가 국제사회의 제재로 어려워지고 남북경협은 계획경제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주저하면서 외화 벌이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다”며 “아리랑공연도 그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육체적 훈육의 사회학

아리랑공연은 북한 주민, 특히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효과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정치교육의 도구이기도 하다. 한 탈북자는 “아리랑공연 훈련 과정에서 인권 유린이 빈번히 일어나지만 학생들 중에는 영예로운 고통의 훈육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아리랑공연의 혹독한 훈련을 앞으로 학생들이 체제를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한 육체적 훈육 과정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을 효과적으로 주입시킬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과거 사회주의 동유럽권 국가들에서 체육이 발달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많은 주민에게 아리랑공연을 관람케 하는 것도 사회적 통제를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 주민들에게 정치적 축제를 보여주면서 체제에 대한 위기감을 잊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아리랑공연 둘러싸고 南서도 시끌
2005년 교사-공무원 등 7730명 방북해 관람
2007년 盧 전대통령 관람… 두차례 기립박수

북한의 아리랑공연 관람 행렬에는 한국의 교사와 공무원이 대거 포함돼 파문이 일기도 했다.

2005년 교사와 공무원들이 아리랑공연 관람을 위해 대거 방북해 논란이 일었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 학생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심한 공연을 교사와 공무원이 집단 관람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것이었다. 당시 전북 경기 인천 등의 공무원이 대거 아리랑공연을 관람했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05년 아리랑공연을 관람한 한국인은 교사와 공무원을 비롯해 7730명에 달했다.

이들이 1박 2일 일정의 아리랑공연 관람에 쓴 돈은 1인당 평균 100만 원 정도였다. 이 중 남북 직항로의 항공료 등을 제외한 공연 관람료와 숙박비, 교통비 등 55만∼60만 원이 북한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아리랑공연 관람으로 한국에서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돈이 42억∼46억 원에 달했던 셈이다.

북한은 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 한국의 대북 지원단체들을 상대로 공연 관람객을 5000명 이상 모집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은 당시 외국인 전용 상점 쇼핑을 포함해 2박 3일 일정에 100만∼150만 원의 비용을 대북 지원단체에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해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 대통령이 북한의 세습 체제를 찬양하는 선전극을 관람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었다. 노 대통령은 아리랑공연 관람 중 두 차례 기립박수를 쳐 논란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한국군이나 미군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북한 인민군 출연 장면을 빼고 태권도 시범 장면을 넣었다.

외국 인사로는 2002년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2005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아리랑공연을 관람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00년 아리랑공연의 전신인 집단체조공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을 관람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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