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6자’대신 ‘양자’로 새판짜기 속셈?

  • 입력 2009년 7월 17일 02시 56분


■ ‘6자회담 종언’ 강경발언

주권존중-핵군축 ‘조건’ 달아
美와 협상 판키우기 전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4월 14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한 직후부터 북핵 6자회담 불참을 공언해 온 북한이 한걸음 더 나아가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고 선언했다.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김영남 위원장의 발언인 만큼 이제 6자회담은 물 건너간 것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는 ‘북한식 주장’에서 흔히 드러나는 각종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한 독법(讀法)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주권과 평등에 대한 존중 원칙이 부정되는 곳에서는 대화와 협상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달리 해석하면 미국 등 관련국들이 북한의 주권을 존중한다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북한식 의사표현인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권력승계 문제 등 내부적 문제와 함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 등 외부적 여건이 불리해 움츠리고 있지만 내부 정비가 끝난 뒤엔 뭔가 다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군축협상’을 언급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북한은 6자회담보다는 미국과의 양자 협상으로, 핵 프로그램 폐기가 아닌 핵무기 군축협상을 벌일 것을 희망해왔다. “핵 군축협상을 재개할 준비마저 되어 있지 않다”는 발언을 뒤집어보면 북한은 6자회담보다는 새로운 틀에서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먼저 시작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 참가국 중 어떤 국가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북한이 원하는 형식의 협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이 내부 정비를 마치면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문제를 꺼내들고 미국과의 고위급 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럴 경우 6자회담도 열리겠지만 북한은 6자회담을 영변 핵시설 폐기에 국한하고 북-미 고위급회담을 핵군축회담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핵시설 폐기와 핵 군축회담의 2원적 접근방식을 취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정부는 23일 태국 푸껫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의 의도와 국제사회의 대응 방향을 지켜본 뒤 6자회담 전략을 재점검할 계획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ARF에 참석하기로 한 것도 이런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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