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3% 싸진 佛와인 어때” 2020년 “삼겹살 1㎏에 5000원!”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 40대 가상주부 통해 본 소비생활 변화

2013년 중형차 관세8% 철폐, 독일제 바꾸자는 남편과 갈등

스카치위스키도 약 20% 내려 값싼 유럽치즈 들고 아들면회

국가 간 자국 산업보호를 위한 갖은 ‘암투’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이 확산되는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도 마찬가지다.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유럽산 고급 승용차와 와인, 각종 명품 의류의 가격이 떨어질 여지가 생겼다. 얼핏 보기에 유럽산 제품이 고가품 위주여서 서민층이 받을 혜택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서민의 대표식품으로 통하는 삼겹살이 좋은 예.

가상의 전업주부 장모 씨(40·2009년 현재)를 통해 한-EU FTA가 한국인의 소비생활에 가져올 변화를 조망해 본다. 물론 이는 업계와 전문가들의 추산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구체적인 가격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격 인하 요인이 생겼다고 해서 모든 업체가 그만큼 가격을 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 “FTA란 값싼 유럽산 와인이다!”

지난해 체결된 한-EU FTA가 발효됐다고 아침 신문에 났다. 한미 FTA 때는 나라가 그렇게 시끄럽더니 이번에는 거리도 조용하고, 국회도 조용했다. 그래도 ‘나랑 무슨 상관이랴’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때 남편과 분위기 잡으며 마셨던 프랑스산 와인들이 하룻밤 새 값이 뚝 떨어졌다.

22만 원대였던 ‘샤토 탈보 2005’는 19만1400원 선에, 5만 원대였던 ‘마스카롱 2006’은 4만 원대에 팔렸다. 단골 와인 매장의 점원이 와인에 붙는 관세 15%가 없어져서 가격이 13% 정도 내린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FTA의 첫 효과를 와인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그림의 떡’이지만 150만 원대인 프랑스산 ‘샤토 무통 로칠드 2004’는 20만 원이나 싸졌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온 가족이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한번 가봐야겠다. 식당 와인 값도 따라 내렸겠지….

2010년 “FTA란 내가 좋아하는 버버리 코트를 갖는 것이다”

와인만 내린 게 아니다. 백화점에 가봤더니 보너스를 타면 사려고 점찍어 뒀던 200만 원대 버버리 코트가 10만∼20만 원 싸진 게 아닌가. 이렇게 한가하게 찍어두기만 할 때가 아니다. 1층 명품 매장을 휙 둘러봤다. 100만 원이 넘는 명품 핸드백들도 가격이 좀 내린 것 같기는 하다. 잡화매장 직원들이 조금만 기다리면 샤넬 화장품에 붙는 관세 8%도 없어져 가격이 내릴 것이라고 귀띔해준다.

그동안 남편하고 애들 신경 쓰느라 치장도 못해 봤는데 가격도 내린 김에 오늘 뭔가 하나는 사야겠다. 뭐가 좋을까.

2013년 “FTA란 아우디(독일 차)에 대한 남편과의 갈등이다”

남편이 요즘 입이 잔뜩 나왔다. 나는 ‘한-EU FTA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5년 넘게 탄 배기량 2000cc 국산 자동차를 바꾸자는 남편의 제안에는 동의했다. 그런데 자꾸 “아우디를 사고 싶다”고 하는 것 아닌가. ‘배기량 1500cc 이상 유럽산 중대형 승용차의 관세 8%가 FTA 발효 3년이 지나면서 철폐됐기 때문에 값이 많이 싸졌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친한 대학 친구들과 골프장을 다니더니 남편의 눈이 더 높아져 버렸다. 아우디의 심벌이 ‘4연속 파’를 상징해 골퍼들 사이에선 아우디가 꿈의 차라는 것이다.

남편 손에 억지로 이끌려 수입차 매장을 처음 가봤다. 한국에서 잘나가는 아우디 모델 중 하나인 ‘A6 3.2 콰트로’(3200cc)의 기존 판매가격은 6850만 원. 매장 직원이 400만 원 정도 싸질 것 이라며 구입을 권한다. 그래도 어떻게 6000만 원 넘는 차를 사나. 중학교 1, 3학년인 아이들의 과외비가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2015년부터는 1500cc 이하 유럽산 소형차의 관세도 없어진대.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며 남편 손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은 자신의 뜻이 좌절되자 요즘 부쩍 ‘만취한 상태의 늦은 귀가’로 항의 표시를 한다. 참다못해 “당신 무슨 돈으로 그렇게 술을 먹고 다녀”라고 쏘아붙였다. 남편이 또 FTA 핑계를 댄다.

“유럽산 스카치위스키의 관세 20%도 FTA 발효 3년 되면서 철폐됐거든. 술 양은 늘었지만 지출하는 돈은 그대로니 상관 마셔.”

으, 저 웬수.

2020년 “FTA란 군대간 아들에게 삼겹살 많이 구워 주는 것이다”

이번 주말엔 군대간 아들에게 첫 면회를 가기로 했다. 전화로 돼지고기가 먹고 싶단다. 장보러 가니 벨기에산 돼지고기가 1kg에 5000원도 안되는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한-EU FTA 효과는 참 오래도 가는군. 면회 가는 김에 아들이 어릴 적 좋아하던 카망베르 치즈도 사야겠다. 전에는 1만 원이 넘는 것 같더니 이젠 9000원대에 나와 있네. 빨리 가서 배불리 먹여야지.

산업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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