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마다 뒤집는 ‘쳇바퀴 사교육 대책’

  • 입력 2009년 6월 29일 02시 59분


고교내신, 5등급 절대평가→9등급 상대평가→다시 5등급 절대평가?

사교육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대체로 희망보다 절망에 가깝다. 사교육 대책의 아이러니다. 학교와 학원 가릴 것 없이 “사교육 대책이 나올수록 사교육 시장이 커진다”고 입을 모은다.

어떤 대책이 나와도 사교육이 줄지 않는 이유는 ‘예측 가능성’과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내신 반영 방식, 특수목적고 입시처럼 굵직한 정책도 순식간에 뒤집히기 일쑤다. 정권마다 5년의 짧은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다 보니 대증요법에 매달린 탓이다. 불과 2, 3년 뒤 진학을 앞둔 내 자녀가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조차 알 수 없으니 ‘사교육 종합세트’가 성행한다.

교육 철학보다는 경제 상황, 민심의 향방에 따라 대책이 갈지자를 그리는 것도 사교육 팽창의 원인이다. 참여정부가 폐기처분한 내신 절대평가를 현 정부가 다시 살리려는 데에는 내신 사교육에 부담을 느끼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지지를 회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 작용했다. 지난 정부의 사교육 대책이 특목고 규제에 초점이 맞춰진 배경에는 ‘특목고가 교육 기회 불평등을 조장하고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는 이념론이 깔려 있었다.

교육 외적 변수에 따라 수시로 바뀐 사교육 대책 가운데 가장 많은 ‘풍상(風霜)’을 겪은 것은 내신이었다. 절대평가 방식을 유지해 온 고교 내신은 참여정부 들어 상대평가로 바뀌었다. 2004년 발표된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후속 조치로 2008학년도 입시부터 ‘9등급 상대평가’가 적용된 것. 과열 경쟁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대평가를 도입한 것은 내신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내신 부풀리기는 원천 봉쇄됐지만 고교와 대학 모두 부작용을 호소했다. 고교에서는 친구끼리 책을 훔치거나 중간·기말고사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외국어고, 과학고, 우수 학생이 밀집한 고교에서는 ‘학교마다 실력이 엄연히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등급을 적용하느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고교가 부풀린 학생부를 믿을 수 없다’던 대학들은 ‘고교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등급제를 믿을 수 없다’며 또 내신을 외면했다.

내신이 홀대받고 수능 사교육이 늘자 참여정부는 3년 만에 또 다른 해결책(3·20 사교육 대책)을 내놨다. 내신 반영 비중을 강제로 높이는 것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각 대학에 ‘2008학년도 입시에서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50%로 확대하라’고 강요하면서 교육 당국과 상위권 대학은 정면충돌하기도 했다.

내신 상대평가, 반영비중 확대에 따라 내신 사교육 시장이 커지면서 현 정부는 다시 내신 축소를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주도로 당 여의도연구소가 26일 내놓은 ‘긴급 대책’은 내신을 무력화시키는 수준이다. 내신을 다시 참여정부 이전의 5등급 절대평가 방식으로 되돌리는 것은 공교육 현장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등급을 둘러싼 무한경쟁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하지만 내신 부풀리기 재연을 막기 위해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연계한다는 방안은 고교등급제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사교육 주범으로 꼽히는 특목고 입시도 사교육 대책의 단골 메뉴였다. 참여정부는 중학교 내신 위주의 선발을 유도해 사교육을 막으려 했다. 또 특목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때 내신 상대평가, 동일계 특별전형 등을 통해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했다. 그런데 여의도연구소의 대책은 거꾸로 내신 반영 비율을 줄이도록 했다. 수능의 경우 참여정부는 상위권 대학과의 힘겨루기 과정 속에서 수능 반영 비율을 낮추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반면 현 정부는 수능 과목 자체를 줄이는 해법을 찾고 있다. 계열별로 특정 영역의 반영 비율을 줄이고 탐구영역 선택과목 수를 축소해 사교육 파이를 줄인다는 전략이다.

사교육 대책이 임시변통으로 쳇바퀴 도는 동안 사교육 시장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교육에 대한 원칙을 확립하고 공교육과 사교육 대책 모두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입 자율화가 원칙이라면서 내신 반영 방식을 규제하는 식으로 앞뒤가 안 맞는 대책을 양산하면 사교육을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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