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세 자녀를 스위스에 몰래 유학시킨 까닭은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국내파 한계 절감? 신비주의 전략?

1959년. 김일성 주석을 따라 옛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소련 측 인사로부터 모스크바대 유학을 권유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우리나라에도 김일성종합대학이라는 훌륭한 대학이 있다. 나는 그 대학에서 공부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교과서들은 이를 두고 “아버지의 위업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자기 나라부터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면서 김 위원장 신화 만들기를 위한 선전에 활용하고 있다. 실제 김 위원장은 남산인민학교를 시작으로 6개 국내 학교를 거쳐 김일성대에서 공부했다.

그랬던 김 위원장이 정작 자녀 4명은 모두 해외에서 몰래 공부시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외국생활을 체험하지 못한 데 따른 한계를 스스로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가 ‘은둔의 지도자’라고 지칭될 정도로 대외활동이 저조했던 것은 해외 경험 부재에 따른 자신감 부족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국내에 동창이 많으면 성장 과정을 모두 알기 때문에 우상화 선전을 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대학 동창들은 승진에 오히려 제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다수가 지방에서, 더구나 노동당 같은 실세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에서 중간급 간부로 일하다가 퇴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나마 동창생으로 고위직에 진출한 경우는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정도다. 이 부위원장은 월북 소설가 이기영의 아들이며 형 이평은 김 위원장의 첫 여인인 성혜림의 전 남편이었다고 전해진다.

해외 생활을 하던 김 위원장의 자녀들은 북한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연령인 만 17세 이전에 모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유로운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그들의 의식 형성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도 관심사다. 비슷한 나이에 해외에서 생활했던 북한 외교관들의 자녀들이 귀국 후 북한 체제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언들이 있다. 학교 가는 시간을 빼고는 주로 대사관 내에 머무르며 엄격한 규율생활을 했고 해당 국가 학생들과의 교류도 제한받았기 때문에 귀국 후 오히려 더 자유롭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김 위원장의 자녀들은 인접국으로 여행을 다닐 정도로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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