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으로 연기 무의미”… 안보회의 20분만에 결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 두 정상은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해 긴밀히 공조할 것임을 확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하고 있다. 두 정상은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해 긴밀히 공조할 것임을 확인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 PSI 전면참여 배경-전망
北상황 고려 한달넘게 유보 되풀이
핵실험으로 ‘PSI 명분’ 얻은 셈
95번째 가입… 내달 국제회의 참석

정부가 26일 그동안 미뤄뒀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북한 핵실험 대응 카드로 꺼내들었다. 정부는 진작부터 PSI 참여 원칙을 정했지만 북한이 ‘선전포고’ 운운하며 반발하자 수차례나 전면 참여 발표를 연기해야 했다. 향후 대북정책의 전략적 카드로 남겨두자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함에 따라 이젠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개를 끄덕인 이명박 대통령=PSI 전면 참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사실상 오래전부터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다. 올해 초부터 북한의 대외적 공세가 강화되자 PSI 전면 참여 방침을 굳혔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를 예고해 그 대응책으로 사용한다는 복안이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3월 중순경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PSI 참여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PSI를 전략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한국의 PSI 참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강경 대응을 예고한 데다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직원 억류 사건이 돌출하면서 4월 5일 북한의 로켓 발사 직후 참여하려던 정부의 방침은 미뤄졌다.
이어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제재 방안이 결정될 때에 맞춰 4월 15일 PSI 전면 참여를 선언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인 데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규탄 성명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굳이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또다시 참여를 늦췄다. 이후에도 정부는 북한이 당국간 접촉을 제안해오자 PSI 참여를 다시 연기했고 이 때문에 ‘이젠 아예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정부의 PSI 참여시기를 둘러싼 고민을 덜어준 셈이 됐다. 25일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 이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는 선언 시점을 놓고 약간의 이견이 있었지만 ‘26일 선언’으로 의견이 쉽게 모아졌다. 26일 오전 7시 30분에 다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는 불과 20여 분 만에 PSI 참여를 최종 결정했다. 참석자들은 “오늘 선언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고, 이 대통령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PSI 참여 당위성과 향후 전망=한국이 95번째 가입국으로 참여하는 PSI는 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막는, 현재로선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에 우호적인 러시아까지 참여한 PSI에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PSI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핵 없는 세상’이라는 외교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제시한 핵심적인 통제 시스템 중 하나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초 체코 프라하에서 ‘지구촌 비핵화 비전’을 설명하면서 PSI와 세계핵테러방지협약(GICNT)을 제도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미간 공조체제도 그렇지만 사실상 국제적 규범으로 발전하는 PSI에 불참할 경우 국제적인 낙오국가로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6월 22∼24일에 폴란드에서 유럽지역 PSI 운영전문가그룹(OEG) 회의가 열린다”며 “역외 국가도 참여가 가능한 만큼 우리도 협의를 거쳐 참석해 PSI의 핵심정보와 운영방법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SI 참가국들은 9월엔 호주에서 워크숍을 열고, 10월 말에는 싱가포르에서 차단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 李대통령-오바마 20분간 전화회담
李대통령 “北 비슷한 패턴 반복 국제 공조로 막아야”
오바마“PSI참여 기쁘고 감사 美 핵우산 제공 확고”

북한의 2차 핵실험 대응 방안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이 26일 통화를 했다. 20여 분간의 통화에서 두 정상은 긴밀한 공조를 거듭 확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굳건(rock solid)하다”고 강조한 뒤 “미국의 군사력과 핵우산이 한국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확장돼 있으며 확고하다는 것을 한국 국민에게 분명히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들도 이 점을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2006년 10월 1차 북한 핵실험 때, 북한이 오히려 국제사회와의 대화가 재개되는 등 보상을 받았던 경험을 우리가 참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에도 이런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긴밀히 공조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도 공감을 표시하며 “6자회담 참가 5개국 간에 긴밀히 조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이날 정부의 PSI 전면 참여 선언에 대해서도 양 정상은 대화를 나눴다. 이 대통령이 전면 참여 선언 배경에 대해 설명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PSI 참여 결정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환영한다. 한국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며 다른 PSI 참여국들도 환영할 것”이라며 “국제적인 지도력을 대통령께서 보여준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감사(appreciation)’의 뜻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6월 워싱턴 정상회담 때 추가로 중요한 현안을 논의하겠지만 (대북 문제를 포함해) 그에 앞서라도 이슈가 있다면 언제든지 통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굉장히 슬픈 사건이다. 한국 국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고 이 대통령은 “감사하다. 유족들에게도 애도의 뜻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후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도 15분가량 통화를 하고 북핵 문제에 공동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러드 총리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우리 영해내에서만 WMD거래 차단 활동
■ PSI 둘러싼 오해와 실상


정부의 PSI 전면 참여를 놓고 일각에서는 PSI 전면 참여가 북한과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PSI를 둘러싼 오해와 실상을 문답으로 풀어본다.
Q. PSI는 북한을 겨냥한 것인가.
A. PSI는 특정 국가를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살상무기(WMD) 거래 차단에 목적이 있다. 따라서 불법적으로 WMD를 거래하는 국가나 개인이 그 대상이다. 북한이 한국의 PSI 참여를 반대하는 것은 한국 수역에서 WMD를 싣고 돌아다니더라도 참견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Q. PSI에 전면 참여하면 북한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나.
A. 한국이 PSI에 참여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국내법과 남북해운합의서를 적용하고 있고 이런 상황은 PSI 가입 후에도 동일하다. 정선이나 검색 활동도 기존 규범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PSI 전면 참여가 남북 간 무력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Q. 지금 굳이 참여하는 이유는….
A. 2003년 PSI가 출범할 당시엔 국내에서 이 문제가 정치 이슈로 불거지면서 PSI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PSI 작전이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참여국의 영해 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임에도 마치 공해상에서 충돌을 가져올 것이라는 오해도 확산됐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05년부터 미국의 요청으로 PSI 8개항 중 역내외 훈련참관단 파견 등 5개항에만 참여해왔다. 그러나 WMD 확산 방지가 국제적 관심사가 된 상황에서 더는 참여를 미룰 수 없게 됐다. 특히 PSI의 핵심은 참여 국가 간 정보 공유에 있다. 중요한 정보공유 과정에서 한국이 계속 배제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Q. 국제법상 문제는 없나.
A. PSI는 참여국의 국내법과 국제법 규범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어서 문제가 없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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