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대통령 서거의 정치적 파장

  • 입력 2009년 5월 23일 12시 18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서(急逝)는 정치권에 심대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전직 대통령의 유고(有故) 때마다 정치권은 급속한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거나, 여야 정국 운영의 주도권이 바뀌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더욱이 민주당 및 재야 친노(친 노무현) 진영은 노 전 대통령의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 '정치적 보복'이라며 정부 여당을 공격해 온데다, 노 전 대통령의 사인(死因)이 자살로 확인됨에 따라 이번 유고의 파장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정치권은 상대적으로 신중을 기하겠지만 친노 지지층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결국 현 정부 여당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직후 노 전 대통령의 과거 개인홈페이지였던 '사람사는 세상, 봉하마을'에 올라온 수백여 건의 글 가운데서도 '이건 자살이 아닙니다', '노 대통령은 살해 됐습니다' 같은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띄었다.

정치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당장 6월 임시국회에서의 쟁점법안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주목하고 있다. 현 정부 여당으로서는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치적 보복'에 따른 결과라는 식으로 국민에게 받아들여진다면 6월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사항인 방송법 개정안 등 미디어관계법 처리를 민주당과의 합의 없이 처리하기는 부담스러워질 것으로 보인다.

비록 3월 여야 원내대표간 미디어관계법에 대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 여론 수렴 등의 과정을 거친 뒤 6월 국회에서 표결처리 한다'고 합의는 했지만 민주당은 미디어관계법을 한나라당이 제출한 원안 그대로 처리할 수는 없다며 처리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다만 민주당으로서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눈총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을 기해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

김형오 국회의장으로서도 여론의 변화 추이에 따를 수밖에 없어 6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관계법에 대한 직권상정 카드를 꺼내기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최근 여야 원내대표가 교체 되면서 서로의 전의를 확인한 미디어관계법 처리가 6월 임시국회에서도 미뤄진다면 정국 운영의 주도권은 민주당 등 야당에 상당 부분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국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 전 대통령의 급서는 역대 전직 대통령들의 굴곡진 역사의 멍에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에 또 하나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본인이 유고를 겪거나 대통령 자제들이 검찰 수사를 받고 형사 처벌되는 씁쓸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하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고,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가장 믿었던 측근의 하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서거했다.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과 후임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후 5공(共)비리 청산 과정에서 구속 수감됐고 수천억 원대의 추징금을 내게 됐다.

첫 문민정부로 자부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차남 현철 씨가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임기 중에 차남 홍업, 삼남 홍걸 씨가 각각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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