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빅4’, 원내대표 경선 4인 4색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이 친이계의 압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당내 ‘실력자’들의 희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은 경선 기간 중 ‘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박근혜 전 대표는 비주류의 한계를 여실히 확인하면서 쓴맛을 봐야 했다. 친이재오계에선 ‘국정책임론’을 강조하며 안상수 원내대표로 세 결집을 주도했다.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를 띄웠던 박희태 대표는 계파 화합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들의 성적표를 살펴본다.》

씁쓸
■ 이상득 의원

경선 내내 ‘보이지 않는 손’ 논란
일각선 “영향력 예전 같지 않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경선 기간 내내 논란의 핵심에 서 있었다. 당 화합책의 일환으로 ‘최경환 정책위의장 카드’를 미는 ‘보이지 않는 손’은 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는 논란이 확산되자 엄정 중립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경환 카드’에 불안감을 느낀 친이계 주류가 이 전 부의장의 태도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막판에는 이 전 부의장이 친이(친이명박)계인 안상수 의원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이계가 결집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경선 과정에서 그가 당에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가 ‘최경환 카드’를 민다는 소문이 퍼지자 위기감을 느낀 친이계가 안상수 의원 쪽으로 강하게 뭉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친이계가 이 전 부의장의 뜻을 사실상 집단적으로 거스른 것이다. 친이 측의 집단행동에 따른 경선 후유증으로 당내 갈등이 고조될 경우 이 전 부의장이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할 여지는 남아 있다. 한 친이계 의원은 “SD(이 전 부의장의 영문 이니셜)가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나무는 가만히 있으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가 당에 남아 있는 한 이런 굴레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쓴맛
■ 박근혜 전 대표

‘최경환 카드’ 친이계에 외면 당해
비주류 한계 확인… 향후 행보 주목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원내대표 경선에서 사실상 참패했다. 화합 카드로 불렸던 ‘황우여-최경환’ 조는 친이계의 호응을 별로 얻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당내 ‘비주류’의 한계를 ‘62표’라는 숫자로 확인했다. 박 전 대표가 원내대표 경선에 참석해 직접 한 표를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황-최’ 조에 큰 힘이 실릴 것이란 당초 예측은 빗나갔다.

그러나 그가 ‘김무성 카드’를 걷어차면서도 이번 경선에서 투표에 참가해 원칙과 절차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것은 거듭 확인됐다. 박 전 대표가 용인한 ‘최경환 정책위의장 카드’는 친박계에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박 전 대표는 화합할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봉합하는 동시에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미래 권력’으로의 이동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한지 점쳐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내 화합을 촉구하던 소장파나 쇄신파도 정작 투표장에선 ‘황-최’ 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한 친박계 의원은 “경선 흥행을 위해 ‘황-최’ 조를 띄워 놓고 정작 투표장에선 외면해 버리곤 무슨 친이-친박 화합을 얘기하느냐”며 경선 결과에 불만을 토로했다. 투표장에서 굳어진 박 전 대표의 표정은 그의 복잡다단한 속내를 보여주는 듯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조심
■ 이재오 전 의원

막판 세결집… 재기 가능성 확인
친박계의 집중 견제 부담은 여전

화합형의 ‘황우여-최경환’ 조로 쏠리던 판세를 막판에 다시 ‘안상수-김성조’ 쪽으로 뒤집어 놓은 것은 이재오 전 의원과 가까운 서울 수도권 의원들과 정두언 의원 등 친이 직계들의 결집이었다. ‘최경환 정책위의장 카드’를 받아들이면 친이 주류가 스스로 무장해제하는 꼴이 되고 권력 누수도 눈앞에 닥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들은 경선을 2, 3일 앞두고 친이계 의원들을 적극 설득하면서 판세 변화를 유도했고 결과적으로 승리했다. 이상득(SD) 전 국회부의장이 마치 황 의원 조를 지지하는 것처럼 알려지자 SD 견제에 나선 것도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경선 기간 내내 침묵을 지켰다. 10월 재·보선에 출마하려면 친박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의원 계열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똘똘 뭉쳐 안상수 의원을 당선시킴에 따라 결과적으로 “배후에는 이재오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됐다. 당내에서는 두 계파가 노골적인 표 대결을 벌인 상황에서 친이계가 압승함에 따라 이 전 의원의 당내 기반이 탄탄함을 재차 확인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친박의 ‘공적 1호’로 불린 그는 10월 재·보선을 5개월 앞두고 또다시 친박계의 집중적인 견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민망
■ 박희태 대표

재보선후 화합책 번번이 무산
계파갈등만 커져 리더십 상처

새 원내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리더십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카드가 무산된 후 화합책의 대안으로 비쳤던 ‘황우여-최경환’조마저 참패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4월 재·보선 패배 수습책으로 당내 화합을 위해 이리저리 뛰었지만 결과적으로 경선 과정을 통해 계파 간 갈등이 커진 상황이 돼버렸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경선 결과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는 의원들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대안이 없다고 박 대표 체제를 유지한다면 10월 재·보선에서도 희망이 없다”면서 “조기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양 계파가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표를 대신할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박 대표의 임기는 내년 7월까지다. 10월 재·보선에 출마해 원내 진입을 구상하는 박 대표로서는 신임 원내지도부와 결속해 현 체제를 그대로 끌고 가려는 구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당을 쇄신하자는 목소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현 체제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안상수 신임 원내대표의 선출을 계기로 당 운영에서 당청이나 당 지도부 내의 엇박자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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