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설 끓는 ‘박근혜 당권론’… 朴은 침묵모드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어느 길로 갈까 한나라당이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교체 쪽으로 무게가 기울면서 4·29 재·보궐선거 참패 뒤 불거진 계파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11일 5박 6일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어느 길로 갈까 한나라당이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교체 쪽으로 무게가 기울면서 4·29 재·보궐선거 참패 뒤 불거진 계파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11일 5박 6일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집권 중반기 앞두고‘마지막 화합 카드’ 거론
친이-친박 속내는 복잡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라.”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당 대표에 출마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의중과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당을 전면적으로 쇄신하고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간 갈등의 뿌리를 없애려면 박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논의는 조기 전당대회를 전제로 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당의 전면에 나서면 차기 대권구도가 조기에 가시화될 수밖에 없다. 내년 5월 지방선거 공천에도 큰 영향을 주는 카드다. 친이로선 많은 것을 내줘야 한다. 친박도 ‘여당 내 야당’ 역할에서 벗어나 국정 운영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 “박근혜 당 대표는 마지막 당 화합 카드”

박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 얘기는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가 무산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의 ‘거부권’ 행사 이후 당 화합과 쇄신 논의가 겉돌자 ‘최후의 당 화합 카드’로 그의 출마론이 거론되는 것이다.

당내 개혁성향 초선 의원 14명의 모임인 ‘민본21’과 친이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이미 박 전 대표가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이 주류 진영에서도 박 전 대표 출마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친이계 초선 의원은 12일 “박 전 대표가 출마한다는 것은 이 대통령과의 교감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전당대회로 인한 내분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친이계 인사는 “박근혜 대표 체제라 하더라도 친이계에서 원내대표를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원칙론자인 박 전 대표가 명분에 어긋나는 당 운영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 진영에선 아직은 반대 기류가 강한 편이다. 우선 이상득 의원 등 친이계 핵심들이 ‘박근혜 당 대표론’에 부정적이다. 이 의원은 최근 “당분간은 박희태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친이 의원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두언 의원도 “검토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지만 박 전 대표가 나서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친이계 의원 사이에선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내주자는 말이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때문에 친이 일각에서는 ‘정몽준 대표 추대론’과 ‘이재오 전 의원 출마론’을 차선책으로 거론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황은 다급하다. 어설픈 쇄신책으로 미봉하려다간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해 집권 3년차를 맞게 되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리더십이 크게 훼손될 수도 있다. 박 전 대표를 내세워 일단 다급한 불을 끈 뒤 후일을 도모하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 이 대통령의 차기 보장 여부가 관건

박 전 대표 측은 조기 전당대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박 전 대표는 11일 귀국 후 인천공항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고 “이미 태도를 밝혔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당분간 침묵 모드를 유지할 예정이다. 조기 전당대회가 열린다 해도 박 전 대표가 나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차기 대권을 쥐려는 박 전 대표가 지금처럼 이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를 계속 갖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박 전 대표에게 차기를 보장하면서 당권을 제안하면 박 전 대표도 거부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대표를 맡을 경우 대권 수업을 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 이 대통령 또한 당 화합을 기반으로 국정을 이끌 수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상당 부분을 양보해야 하고 박 전 대표도 국정운영의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이해득실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담판을 짓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조기 전당대회 손익은

친이측 朴검증 기회-권력누수 ‘양날의 칼’

박근혜 대표 돼도 10월 재보선 등 ‘지뢰밭’

소장파 제도권 진입-역효과 ‘모 아니면 도’

정몽준 朴과 대결 성사되면 ‘밑져야 본전’

한나라당의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당내 각 세력의 손익계산서는 어떨까. 조기 전당대회는 현 지도부의 전면적인 물갈이를 뜻한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이 기득권을 버리고 후선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함께 내일로’ 등 친이(친이명박)계에서 제기한 조기 전대는 궁극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에게 당을 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전 대표도 당원과 여론의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양날의 칼이나 마찬가지다.

박 전 대표가 조기 전대를 거부할 경우 정치지도자로서의 책임 문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가 전대를 수용한 후 만약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할 경우 리더십에 적지 않은 흠집이 생기게 된다. 박 전 대표가 경선을 통과해 대표직에 오를 경우도 만만찮은 정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 등 한나라당으로서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친이계 핵심 관계자는 “정권에 대한 견제심리가 팽배한 상황에서는 거대 여당의 수장(首長)이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면서 “지금은 우리가 야당이 아닌 여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친이계는 박 전 대표에게 당권을 내줄 경우 당청 간의 갈등과 권력 누수에 따른 국정 불안을 감수해야만 한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 등 ‘쇄신파’는 조기 전대를 통해 원로그룹 및 계파 중심의 당권 구도에 자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3선 이상인 이들은 당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번에 당 지도부에 입성해 계파 간에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 주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쇄신 방안이 흐지부지되거나 원 의원이 이끄는 쇄신특별위원회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엔 정치적 한계만 드러내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정몽준 의원은 최고위원 중 유일하게 박 전 대표가 참여하는 전대론을 주장한 것만으로도 시선을 모았다. 4·29 재·보선 때 텃밭인 울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패배한 데 따른 정치적 부담도 희석시킬 수도 있다. 더욱이 전대가 성사되고 박 전 대표와 당권을 놓고 맞선다면 정 의원은 박 전 대표와 견줄 수 있는 대항마로 부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조기 전대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의도가 제몫 챙기기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조기 전대의 실현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쇄신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민본21’ 공동간사인 김성식 의원은 “조기 전대는 당의 면모를 새롭게 하기 위해 검토하는 것이지 고공에서 분란을 더하는 형태로 논의가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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