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소장파 추진에 초선모임 ‘민본21’ 동조
“지금 나서도 실익 없어” 친박측 반응 시큰둥
‘김무성 원내대표론’이 무산되면서 한나라당의 쇄신 작업이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당장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간 대립에 이어 친이계 내부의 소계파 간 갈등까지 재현되는 양상이다.
○ 조기 전대론 찬반 논란
친이계 소장 개혁파와 비주류 의원들은 계파 화합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친이와 친박 간 거중 조정의 역할을 부여 받고 대표직에 오른 박희태 대표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판단 때문이다. 친이 직계인 권택기 의원은 “8월에 조기 전대를 해서 지도부를 전면 교체하고 당을 쇄신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준 뒤 10월 재·보선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재선의원도 “지도부가 무너지기 시작한 상황에서 조기 전대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한 발 더 나아가 10일 기자 간담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처럼 실질적으로 당에 지도력과 영향력이 있는 분이 전대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계파의 수장(首長)직에 안주하지 말고 당의 전면에 나서되 그 전에 전대에서 대선 경선 이후의 행보에 대해 당원들의 심판을 받아보라는 주장이다.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도 조기 전대 대세론을 주장하고 있다. 김성식 공동간사는 “쇄신과 화합을 지도부가 못 풀면 당원이 풀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 지도부는 조기 전대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견해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조기 전대를 하면 각 계파가 당을 먹느냐 뺏기느냐를 놓고 무한 경쟁에 돌입한다”며 “4·29 재·보선 이후 당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전대를 당 화합의 계기로 승화할 만한 동력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쪽에서도 조기 전대로 지도부가 개편될 경우 국정 운영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쇄신 정국 변수는
조기 전대가 성사된다고 해도 즉각 계파 화합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당장 친박 측에선 전대 자체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지금 상황에서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당 운영에 나선다고 해도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자칫 당권 확보를 위해 주류 측 제안을 거부해 왔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지역의 한 의원은 “궁극적으론 박 전 대표에게 차기 대권과 관련한 정치적 보장을 해줘야 계파 간 화합이 가능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전대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박 전 대표를 링 위에 올려놓겠다는 의도는 국정 실패의 책임을 함께 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친이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조기 전대에 참여하지 않으면 박 전 대표도 퇴진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만약 조기 전대를 안 하면 내년 지방선거 이후 당을 ‘땡처리’해서 박 전 대표에게 고스란히 바치는 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11일 미국에서 돌아오면 박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극적인 해결책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 대표는 압력에 밀려 조기 전대론을 수용하면서 불명예 퇴진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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