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후에서 여권 움직인 ‘이상득의 1년’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당-정-청 넘나들며 조정 역할

권력독점-화합기여 평가 갈려

‘상왕’ ‘만사형통’ 비판에

외부활동 최대한 자제

법안전쟁 등 진두지휘

향후 정치력-행보 관심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419호 출입문은 늘 닫혀 있다.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있는 다른 의원실과는 사뭇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사무실이다.

이 방 보좌관들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함부로 사무실에 사람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돈다.

이 의원은 지난 1년 동안 외부 강연이나 축사 등 대외 활동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현직 대통령의 형으로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 조심스러운 행보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1년여 동안 ‘당-정-청을 넘나드는 막후 최대 실력자’라는 데 이견을 다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파워가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1월 20일 용산 참사가 터졌을 때다. 이 의원은 맹형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과 원세훈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현 국가정보원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를 통해 진상 규명부터 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는 쪽으로 여권의 해법이 조율됐다. 이후 당-정-청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는 원외 대표인 박 대표와 비주류인 홍 원내대표 체제에서 계파를 초월해 ‘당내 소통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는 매주 10명 이상의 여당 의원을 만나 왔다. 지난달에는 부산에서 김무성 허태열 서병수 의원 등 친박(친박근혜) 의원들과 만나 ‘친박 달래기’에도 적극 나섰다. 초선 의원 중에는 이 의원과 나눈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친박 의원들도 “SD(이 의원 이름의 영문 이니셜)가 당 화합에 기여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주요 장관들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을 수시로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과 가깝게 지내는 한 초선 의원은 “여당이 화합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게 이 의원의 판단”이라며 “그는 당 화합을 기반으로 동생이 이끄는 정부의 성공을 위해 뒷바라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2월 임시국회 때도 ‘법안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당시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미디어 관계법 등 쟁점법안 처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따로 만나 직권상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의원은 나름대로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눈에 띄지 않게 활동했다. 야당은 그를 ‘상왕(上王)’ 같은 존재라고 비판한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다. 한나라당의 한 최고위원은 “이 대통령은 이 의원을 ‘친형 이상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여긴다”고 전했다.

당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여권의 모든 권력이 SD에게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다. 주류 측의 한 중진 의원은 “이 의원이 핵심 당직자에게 전화를 걸어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내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며 “그러다 보니 당의 공식기구가 무력화하는 감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당의 화합을 강조하면서 이재오 전 의원 계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소외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을 빼놓고 SD가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SD는 그 자신이 만들어 놓은 당내 ‘힘의 균형 상태’가 깨지는 것에 큰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SD가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자신에 대한 이런 비판에 매우 민감하다. 자신이 막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대노한다. 2월 임시국회 때 자신의 광폭(廣幅) 행보와 관련해 “청와대와 교감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자, 그는 “내가 이명박 똘마니냐”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의원은 당의 구심점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친박 진영에서 핵심 당직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도 이 의원과 원만한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차기 원내대표 도전 의사를 밝힌 안상수 의원과 정의화 의원도 이 의원의 의중에 적잖이 신경 쓰는 눈치다.

이 의원은 6선 의원으로 여야의 주요 당직과 국회부의장 직을 두루 지낸 원로다. 그의 행보와 정치력이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을 끄는 건 아닌 셈이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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