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론/서병훈]MB정부 1년①정치/가마솥 찾을 때가 아니다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취임 1주년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가능하면 험한 말은 삼가고 싶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MB정권 1년이 이 지경인데 앞으로 4년을 어찌 사나?” 같은 한탄이 울려 퍼지지만 이런 비관론에 대해서도 귀를 막고 싶다. 그러나 시중에 나도는 ‘국민 개그’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대통령과 밥솥 이야기’이다. 최근 역사만 옮겨본다면, 직전 노무현 대통령은 110V 전기밥솥을 220V 전원에 꽂는 바람에 나라살림을 망치고 말았다. 이른바 ‘코드 오류’를 빗댄 이야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전기밥솥에 장작불을 열심히 때고 있단다.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져 상황 파악을 못한다는 말이다. 여간 마음을 찌르지 않는다.

전기밥솥에 장작불 때서야

대통령은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을까. 왜 국민이 정부에 대해 시큰둥할까. 대통령을 칭찬하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욕하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한마디로 국민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면서 ‘잊혀진 남자’가 되고 있다. 국민과 대통령이 왜 이토록 삭막한 ‘사무적 관계’가 되었을까. 정치를 부담스러워하고 멀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주변 사람이 정치를 백안시하는 행보를 계속하다가는 남은 4년의 임기도 순탄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이 정치를 폄하한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권력에 저항하고 분란을 일으킨다고 생각해서다. 실용주의자도 정치를 우습게 여긴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술수가 비슷하다고 간주한다. 정치를 배제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것은 큰 착각이다. 진짜 정치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나라의 주인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일이 바로 정치의 본령이다. 국민의 힘을 무시하는 사람이 정치를 홀대한다.

모두가 알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지시를 내리는 데 익숙한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포용할 줄도 모른다. 그는 1년 전 취임사에서 ‘창조적 실용주의’로 일류 선진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자칫 업적주의에 빠질 수 있다. 국민을 객체로만 인식하면서 동력을 이끌어내야 할 당위를 깨닫지 못한다.

이런 이유에서 사상가 마이클 오크숏은 실용주의를 경계한다. 그에 따르면 ‘신념 정치’는 인간의 자기완성을 지향하며 대중의 열정적 참여를 높이 산다. 반면 ‘회의주의 정치’는 갈등 요인을 줄이고 질서 유지에만 집중한다. 국민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실용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가 신념만 강조해서도 안 되지만 실용주의 일변도로 흘러가서도 안 된다. 정치가 적막강산이 되면 타락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정치 과잉만큼 실종도 문제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와 실용주의의 창조적 접목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더 잃을 것이 없는데 무엇을 망설일까. 국민이 신바람을 내도록 ‘통 큰 정치’를 펴라. 타산정치를 그만두고 ‘국민의 대통령’으로 거듭나라. 첫걸음이 자기희생이다. 특히 측근의 일탈을 엄정하게 단속해야 한다. 청와대와 내각과 한나라당에 정치가 꽃필 수 있게 언로를 열고 권력을 나눠 줘야 한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이런저런 인사들이 국민의 관심을 끌면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는 인파가 명동을 뒤덮었다. 단 사흘 사이에 40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우리 국민은 격정적이다. 한다면 하는 국민이다. 월드컵 때도 그랬고 지난해 촛불시위 때도 그랬다. 마음만 먹으면 광화문 일대 정도는 쉽게 사람으로 메울 수 있다. 이런 국민이 지금 침묵하고 있다. 위기 극복의 광맥이 사장되고 있다. 국민의 마음에 불을 붙여야 한다. 가마솥이나 찾을 때가 아니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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