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파병” 수위 높이는 미국… 머리 싸맨 한국

  • 입력 2008년 12월 23일 03시 07분


“아프간 치안유지 교육 요원 파견해 달라”

정몽준-김장수의원 방미때도 물밑 타진

오바마정부 출범후 정예군 요청 가능성

국민 설득 쉽지않아 정치적 논란 커질듯

버락 오바마 미국 차기 행정부의 출범을 한 달여 앞두고 한국군을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파병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이 잦아지고 그 내용도 구체화되고 있다. 이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한미 간에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조되는 아프간 재파병 요청 수위=미국이 한국군의 아프간 재파병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것은 올 1월 말이다. 당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사단장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에게 “아프간의 치안 유지를 위해 현지 군과 경찰을 훈련시킬 요원들을 파견해 달라”고 말했다.

아프간 무장세력의 한국인 납치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12월 동의·다산부대가 아프간의 바그람 기지에서 모두 철수한 지 한 달여 만에 재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이후 게이츠 장관은 3월 미국을 방문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도 비슷한 요청을 했고, 이에 유 장관은 “군대 파견은 힘들지만, 경찰요원들의 파견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도 미 당국자들의 아프간 재파병 요청 발언은 계속됐다. 특히 이달에는 미 당국자들이 4차례에 걸쳐 아프간 치안문제에 한국의 지원을 바란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국방부 장관 출신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이달 초 미국을 방문한 뒤 본보 기자와 만나 “일부 미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의 아프간 지원 요청에 한국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 섭섭함을 표시했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내년 초 출범하면 결국 한국에 전투병 파병을 요청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백 명 규모의 민사작전 부대 파병 원하는 듯=미국이 급기야 이라크의 다국적군사령부(MNF-I)를 통해 자이툰부대의 아프간 파병 의사를 타진한 것은 아프간에 대규모 민사작전 부대를 보내 현지 치안 유지에 기여해달라는 요청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 정부 당국자들이 여러 차례 언급한 아프간 현지 군과 경찰요원의 양성훈련은 자이툰부대가 이라크 아르빌에서 수행한 주요 민사작전 중 하나다.

자이툰부대는 4년여 간 아르빌의 현지 민병대와 경찰들에게 사격술을 가르치고 대테러 훈련을 시켰으며 검문소와 경계초소를 짓는 데 필요한 물자, 장비를 제공해 현지 치안 확보와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또 미국이 아프간 재파병 대상으로 자이툰부대를 거론함에 따라 향후 오바마 행정부가 경찰 등 민간요원 수십 명 수준이 아니라 수백 명 이상의 정예군대 파병을 한국에 공식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군 소식통은 “미국은 자이툰부대처럼 아프간 현지에서 민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정예 군대를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파병 요청시 정부의 고민과 대응=한국 정부는 아프간 재파병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미국의 공식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요청이 없었다. 현재로선 아프간 재파병 계획이 없다”고 말해 왔다. 정부는 다만 아프간에 파견한 민간 지방재건팀(PRT)을 20여 명에서 좀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의 새 정부가 아프간 재파병을 공식 요청해 올 경우 우리 정부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라크 아르빌보다 치안상황이 좋지 않고, 한국군이 단독 주둔하던 아르빌과 달리 아프간에선 미군과 함께 주둔해야 해 테러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2월 동의부대의 윤장호 하사가 아프간 바그람 기지를 극비방문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노린 폭탄테러에 희생된 데 이어 7월엔 아프간 탈레반 무장세력에 한국인들이 납치, 희생된 일이 있어 이에 충격을 받은 국민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소식통은 “아프간에 민사작전 부대를 파병할 경우 부대 경호를 위해 이라크보다 더 많은 전투병력을 보낼 가능성이 높아 정치권의 논의과정에서 논란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한국군, 아프간 파병에서 철수까지

2003~2007년 동의-다산부대 의료지원-공병활동

정부는 2003년 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동의·다산부대를 아프가니스탄에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파병해 항구적 평화작전을 지원했다.

동의·다산부대는 아프간의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 주둔하며 각각 의료지원과 건설공병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동의부대는 2002년 2월 키르기스스탄에 처음 파병된 뒤 2003년 2월 바그람 기지로 재배치돼 동맹군과 현지 주민 등 25만9500여 명을 진료했다.

다산부대는 바그람 기지 내 도로 확장과 부대 방호시설 설치, 활주로 포장 등 410여 건의 공사 활동을 했다.

5년여간 파병 연인원은 동의부대 780여 명, 다산부대 1340여 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당시 바그람 기지를 극비 방문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노린 이슬람 테러조직의 폭탄 테러로 동의부대 윤장호 하사가 희생되면서 이들 부대의 철군 여론이 불거졌다.

이어 7월에는 아프간의 탈레반 무장세력이 한국인 교회선교단 23명을 납치한 뒤 피랍자들의 석방조건으로 한국군의 연내 철군을 주장했다.

당시 정부는 동의·다산부대의 철군 시한이 2007년 말로 예정됐던 만큼 탈레반 납치세력의 요구를 수용했고 이후 계획대로 동의부대(11진), 다산부대(9진)를 지난해 12월 중순 전원 철수시켰다.

현재 아프간에는 미군 4만여 명을 비롯해 40개국 7만1500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 동아닷컴 임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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