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北 강경조치는 美정권교체 이용하려는 액션”

  • 입력 2008년 11월 18일 02시 59분


‘워싱턴 발언’ 통해 본 국내외 현안 인식

《이명박 대통령은 G20 금융정상회의를 마친 다음 날인 16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 워싱턴특파원 간담회, 토머스 도너휴 미 상공회의소장 접견 등의 일정을 잇달아 소화하며 국내외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비롯한 경제신흥국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미국 현지의 평가를 염두에 둔 듯 이 대통령은 복잡한 현안에 대한 생각을 분명한 어조로 설명했다.

특히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미국과 북한의 접촉 가능성을 비롯한 북한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의사를 피력했다. 미국의 정권교체 후에도 한미관계와 양국의 대북 공조엔 변함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자동차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이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국내 일부의 관측에 대해서도 “오바마 당선인은 아직 거기까지 깊이 검토할 단계에 가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北-美외교- 통미봉남 운운하는데 그런 폐쇄적 생각으론 안돼

이 대통령은 우선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오바마 당선인은 지난번(7일) 통화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현 조지 W 부시 정권이 확답한 것보다도 더 분명하게 한국과 철저히 공조하고 협의하겠다고 먼저 이야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CNN 인터뷰에서도 “한미 관계가 완벽하다면 (북-미 정상회담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혹자는 (이럴 경우) 통미봉남(通美封南) 운운하는데 그런 폐쇄적 생각을 갖고 봐서는 안 된다”며 “6자회담 틀 내에서 (북-미 양측이) 직접 대면(face to face)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일부 언론은 국내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데 한미 관계를 좀 더 깊이 알고 이해해야 한다”며 “미국의 깊은 전략을 이해하면 그런 질문이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의 판문점 육로 통행로 제한 등 잇따른 강경 조치와 관련해 “북한이 미국의 정권 교체 과정을 이용해 장기 전략으로 몇 가지 액션을 취하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대북 문제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이 후계자를 아직 확정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우리는 누가 후계자가 되든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오바마 당선인의 리더십에 대해 “그동안 미국은 너무 하드파워를 외교에 활용해 리더십이 손상됐다”며 “오바마 당선인이 취임해 소프트파워를 갖고 세계 외교에 나서면 더 큰 힘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자동차 문제- 美자동차산업 죽으면 우리 잘된다는 생각 버려야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자동차산업을 지원하는 방법에는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미국 자동차산업이 죽으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잘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이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도 “미국 자동차산업이 잘되면 한국 자동차부품업체들의 수출이 늘고 미국 자동차산업이 잘된다 해도 한국 자동차를 수출할 여지는 있다”고 내다봤다.

이 대통령은 이어 “미국은 철저히 고속도로 중심이고 자동차산업은 미국의 자존심이며 상징”이라면서 “오바마 당선인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산업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된 사람이라 당선 이후 여러 발언을 했지만 선거 때는 무슨 얘기를 못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의 자동차산업이 살아나는 게 우리에게 불리한 게 아니다”라며 “다만 현실적으로 미국 정부가 직접 지원을 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FTA- 양국 국민에 이익되는 일… 美의회 조속한 처리를

이 대통령은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양쪽 국민에게 모두 도움을 주는 것이며 상호 대등한 처지에서 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미국대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FTA를 한 것인 만큼 좀 더 차분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대통령은 “한국에서는 자동차 재협상 가능성, 사이드 협상 등 별별 추측이 많은데 이는 한미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정리된 정책이 나오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 국회도 너무 여야 간에 공개적으로 먼저 떠드는 것보다 조용한 협력을 해서 절차를 밟아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도너휴 소장과의 접견에서도 양국 간 무역 및 투자 활성화, 전략적 경제협력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한미 FTA가 가능한 한 빨리 비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 의회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또 “오바마 당선인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정책과 우리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은 양국 간 협력의 여지가 많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뒤 향후 양국 에너지 기업 간 경제협력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미 상의에서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도너휴 소장은 미국 재계의 한미 FTA 비준 의지가 확고함을 거듭 강조하고 “오바마 행정부가 본격 출범하면 재계가 비준 노력을 적극 펼 것”이라며 “한미 FTA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결국 비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내문제- 불 났을 때는 하던 싸움 멈추고 함께 물 퍼 날라야

이 대통령은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여야 정치권의 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 위기 때 야당도 어느 정도 협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나라 걱정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야당도 갖고 있기 때문에 희망적이며 추가경정예산과 본예산도 여야가 협력해서 아주 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17일 한국에 방송된 라디오 연설에서 “불이 났을 때는 하던 싸움도 멈추고 모두 함께 물을 퍼 날라야 한다”며 “위기를 극복하는 데 힘을 뭉친 나라와 그러지 못한 나라의 격차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숲에서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높은 곳을 찾아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며 “우리가 처한 어려움의 실체를 알려면 우리 안의 시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밖에서 세계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또 “정치권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입법에 하나가 돼 달라. 언론도 국익을 사려 깊게 고려하고 국민의 힘을 모으는 데 앞장서 주기 바란다”며 정기국회 내 민생개혁 입법 처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워싱턴=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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