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만 날린 ‘서민용 정책’ 盧임기말 서둘러 점검

  • 입력 2008년 10월 21일 02시 59분


노인 일자리 강원 1억3000만원 들여 박람회… 취업 1명뿐

면세유 공급 사망자 등에 120억어치 공급… 횡령도 수두룩

■ 작년 靑 감사 요청 정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1년을 앞둔 지난해 감사원이 청와대의 요청으로 감사를 벌인 8건의 정책과제는 무엇이고 감사결과 지적된 정책시행상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노무현 정책 리스트’에 담긴 이들 정책의 일부는 쌀 소득보전 직불금처럼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성장보다는 분배에 정책의 무게를 두었던 노무현 정부가 지지층을 겨냥해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정책이 실제 집행에서는 당초 목표와 다른 결과를 낳거나 적잖은 문제점을 보인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이 같은 문제점이 여과 없이 차기 정부에서 드러날 경우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임기말에 서둘러 감사원에 감사를 의뢰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 말로만 노인 등 취약층 대책?

감사원은 지난해 3월 ‘노인 일자리 사업 추진실태’ 감사에 착수해 올해 3월 4일 그 결과를 공개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비전 2030’ 등을 비롯해 복지 강화 및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노인 일자리 확충을 추진했으나 감사 결과 관련 사업의 상당 부분이 비효율적으로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노무현 정부의 노인 일자리 정책이 △지역 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노인 일자리 유형 비율을 획일적으로 배정했고 △이에 따라 예산 불용, 사업 실패 등을 야기했으며 △형식적인 노인 일자리 박람회로 사업성과를 저하시키는 등 8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노무현 정부에서 노인 일자리 박람회는 시군마다 순회 또는 분산 개최됐는데 정작 취업 실적은 미미했다. 강원도의 경우 2006년 1억3000만 원을 들여 각 시군에서 노인 2952명을 동원해 취업박람회를 열었으나 이 중 단 1명의 노인만이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진행해 올해 8월 8일 공개된 ‘면세유 공급제도 운영 실태’ 감사 결과도 농어민들이 탄식할 만한 내용이다.

면세 휘발유는 시중가의 42%, 경유는 시중가의 절반에 공급된다. 감사원은 농협과 옛 농림부, 국세청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인 결과 2003∼2007년 사망한 농민과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 등에게 2만3450kL, 120억 원어치의 면세유를 공급하는 등 행정력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면세유를 빼돌려 자기 배를 채운 경우도 있었다. 충남 공주시의 한 농협 직원은 2004∼2006년 사망자 명의로 배정받아 남는 면세유 19만 L를 면세유 지급 대상자가 아닌 166명에게 부당 지급했다. A군 수협 모 지점 급유 담당자 B 씨는 2004년부터 역시 면세유를 엉뚱한 사람들에게 팔아 855만여 원을 횡령하거나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 무자격 중소기업에 거액 대출하기도

이에 앞서 올해 1월에는 4조7353억 원대의 수도권 대기 질 관리대책이 공염불이었음을 보여주는 ‘경유자동차 배출가스 저감사업 추진실태’ 감사 결과가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환경부는 대기오염의 주범인 도로 위 먼지는 그냥 둔 채 경유차에 저감장치를 부착하는 데만 수천억 원을 투입했고, 올해도 저감장치와 관련해 90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부실 정책에 대한 책임을 물어 환경부 모 국장 등 공무원 12명을 징계 처분할 것을 환경부 장관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진행돼 올해 5월 공개된 ‘중소기업 정책자금제도’에 대한 감사 결과도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들이 부적절한 대출 행태를 그대로 보여줘 중소기업인들의 공분을 살 만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인천지역 본부의 C 팀장은 2006년 1월 한 중소기업의 중소벤처창업자금 대출의 심사와 검토를 담당하면서 이 업체의 세금 체납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5000만 원을 융자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충남지역본부의 D 팀장도 납세완납증명서를 해당 업체가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1억2800만 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 때 ‘투명한 무기 구입 체계 구축’이라는 취지에서 출범한 방위사업청의 인사를 놓고서도 문제가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실시해 올해 7월 공개한 ‘국방획득 및 연구개발 제도 개선 추진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이 별도 기관인 방위사업청에 근무하는 현역 장군의 직위를 정하고 직접 인사 발령을 내 사업청의 인사권을 침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들 정책 중 일부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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