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강의석씨, 당신 또래 젊은이들이 희생자였다”

  • 동아닷컴
  • 입력 2008년 10월 16일 10시 37분


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 씨 인터뷰

“강의석씨는 제 2 연평해전(서해교전) 유가족들을 이용하지 말라.”

제 2 연평해전(서해교전) 당시 사망했던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가 강의석씨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극단적인 군대 폐지론을 주장해 구설에 오르고 있는 강의석(22·서울대 법대)씨가 이번에는 2002년 제 2 연평해전 전사자들이 ‘개죽음’당한 것이라고 표현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의 공격으로 촉발된 제 2연평해전은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대원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하는 비극을 남겼다. 강 씨는 이에 대해 “그들의 행위는 ‘애국’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상대 또한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전쟁의 위협까지 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유가족과 추모시민들로 이뤄진 ‘제2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는 강 씨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으나 강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과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런 가운데 2002년 당시 참수리 357호에서 조타사로 일하다 전사한 고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 씨를 만났다. 김씨는 ‘제 2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의 운영진이기도 하다.

15일 오후 서울 잠실 부근에서 만난 김 씨는 자그마한 몸집에 쓰러질 듯 파리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김 씨는 갑작스럽게 감기몸살이 왔다며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종선 씨가 전하는 유가족들의 분노는 생각보다 컸다. 그는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것을 떠나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부모님들은 용서할 수 없다는 반응 하시죠. 아들들 이야기인데 두 번 죽인 것이잖아요. 6년 동안 이미 여러 번 죽였어요. 대 놓고 얘기 했다는 게 정말 충격적인 거죠. 자기가 감히 뭔데 어디다 갖다 붙이는 것인지, 강의석씨 나이 또래 청년들이 당시 참수리 호에 있었어요. 자기 또래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걸 한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강 씨 평화 말하며, 언어 폭력 행사”

김종선 씨 역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강 씨가 평화를 얘기하나 자신들에게는 언어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당연히 폭력이죠. 저희한테는 폭력입니다. 어떻게 서울대 법대생이라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까. 그 사람이 내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강 씨 본인은 떳떳하게 얘기한다고 하는데 그게 과연 옳은 것인지, 양심에 따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는데 구분이 너무 없는 것 같았어요.”

김 씨는 강 씨와 싸우고 싶지 않다면서 ‘진심어린 사과와 해당 게시물의 삭제’를 두 가지를 요구했다. 사과문의 경우 인터넷 미니홈피에 게시물로 게재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진실된 사과와 게시물 삭제 하라”

그러나 강 씨가 사과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분노했다. 대화 중간 상당히 감정이 격해져서 때때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말을 하는 군요. 그간 우리가 정부에 대해 얼마나 요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쏟아 부은 노력이 얼마인데 자기가 그걸 얼마나 안다고 그런답니까. 법적 대응을 할 생각입니다. 앞서가신 순국선열, 지금 군에 계신 모든 분들을 모독한 발언입니다. 그 사람, 정말 제 정신입니까.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김 씨는 강 씨의 군대 폐지 주장과 관련해서도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제 2 연평해전도 북한이 1999년 1차 해전 패배를 보복하기 위해 저지른 일입니다. 강군은 전쟁이 안 난다는 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 하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이 약속 이행 한 적 있습니까. 정말 전쟁이 나면 강군은 안 도망가고 싸울 것인지 그걸 묻고 싶습니다. 휴전선 근처, 많은 곳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많은 사건들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 3 제 4의 해전이 언제 일어날지 모릅니다. 공동어로 하자, 포기하자 말들 많은데 말도 안되는 소리죠. 서해 5도는 굉장히 중요한 곳입니다. 금방 북한군이 연평도 강화도 인천으로 밀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선 쓸데 없는 소리 말라고…”

김 씨는 2005년 정부의 전사자 처우에 실망하고 ‘나라가 썩었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김씨의 남편 한 중사는 40일 동안 차디찬 서해 바다 밑에서 있다가 인양됐다. 타기(舵機)를 놓지 않고 참수리 357호와 운명을 같이했던 것이다.

“돈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회복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비교할 건 아닌데 2002년 월드컵 선수들 병역 혜택에 2급 훈장을 받았는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에게는 3,4급 훈장을 주었습니다. 북한과 햇볕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피해를 본 겁니다.”

그는 당시 사용하던 ‘서해 교전’이라는 명칭부터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교전이라는 것은 우연치 않게 일어난 사건인데 제2 연평해전은 북한군의 철저히 준비된 도발로 발발했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1999년 사건을 설욕하겠다는 경고를 한 바 있고 실제로 2002년 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은 화력을 정비하고 갑판도 튼튼하게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내려와 선제 공격을 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그런 것을 정부는 다 아니라고 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돌아오는 건 압력에 미행이었습니다. 도청 장치 비슷한 걸 당하기도 했습니다. 소설 쓴다 말할지 모르겠지만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사는 직업인데 이런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군인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미국으로 떠날 당시 김 씨의 생활은 피폐했었다고 한다. 일자리도 없고 과부라는 부담도 그를 괴롭혔다.

“누가 날 허드렛일에도 써주지 않았습니다. 혼자된 사람 누가 써주나요. 뒷수근거림에 남아날 사람 없습니다. 너무도 힘들었고 결국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생각에 아무도 나를 알아 보지 못하는 미국에 가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청소일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고되게 일을 하니 잡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고생 많은 시절이나 잊을 수 없는 3년이었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미국인들이 위로해줘”

김 씨는 미국에서 전사자를 대접하는 방식은 한국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우스터에 있는 6.25전사자 기념 공원 안에는 제 2 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 벽돌도 있다. 김 씨는 힘이 들 때면 그 공원을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냉대를 받았는데 미국에서 희망을 얻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미국에 아는 사람 하나 없었지요. 힘들 땐 우스터에 가면 남편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이 있지 그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매년 추모일이면 거기 추모 공원에 갔어요. 미국 사람들은 저와 직접 관계가 있지 않지만 제게 와서 위로를 해줬습니다. 한국에서 위로를 조금이라도 더 받았더라면, 장례를 제대로 치렀다면 미국으로 가진 않았을 겁니다. 정부로부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홀대만 받았습니다. 위로는커녕 사건이 의도적인가 우발적인가만 따지더군요.”

김 씨는 한국 사회의 군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군대에 가면 썩는다는 사람이 군 통수권자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군대에 간다고 하면 안됐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가 많이 변했는데 군에 대한 인식만큼은 변하지 않았어요. 독재정권이 군에서 나왔기 때문인데 이제는 군을 우리가 품어줘야 합니다.”

“역사 제대로 가르쳐야”

강 씨의 발언 외에도 최근 공군 사관생도가 좌경 발언을 해서 퇴교 조치 당하고 초등생들 35%가 북침이라고 알고 있다는 등 갑자기 젊은 세대의 안보관을 걱정하게 하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강 씨는 “이 모두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에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유리한 면만 강조하지 말고 다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제2 연평해전에 대해서도) 우리가 잘 배워서 다음 세대들에게 이 이야기를 물려줘야 합니다. 순국선열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현 정부 들어서 제 2 연평해전(서해교전)은 제 2 연평해전으로 격상되고 해군 행사에서 정부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김 씨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고 다른 순국선열 가족들에게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다만 격상된 만큼 훈장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또한 남아 있는 부상자들의 체계적인 보살핌도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yjj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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