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 연 北군부… 南 ‘관광객 사살’ 국제이슈화 노골적 불만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8월 4일 03시 02분


■ 금강산사건 담화 발뺌-책임전가 일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에 대한 3일 북한 군 담화는 진실을 알고 싶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기대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담화문은 A4 용지 4장 분량으로 대부분 발뺌과 책임 전가, 곡해와 변명으로 일관했다.

▽발뺌으로 시작=담화는 첫머리를 “우리는 지금도 사살된 관광객이 (중략) 무슨 목적으로 (중략) 경계울타리를 넘어왔는지, (중략) 무엇을 하려고 하였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발뺌하는 말로 시작했다.

담화는 또 “터놓고 말하여 군사통제구역 안에 불법 침입한 그가 죽음을 당하였으니 말이지 우리로서는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고 주장했다.

이는 동이 터오는 훤한 새벽에 한국 관광객임이 명백한 50대 여성을 총으로 사살한 범죄를 숨기기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

▽책임 전가와 변명=담화문은 피살된 관광객 박왕자 씨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넘어서는 안 될 경계 울타리를 벗어나 관광객이 우리 측 군사통제구역 안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멈춰서라는 우리 군인의 요구에 응하였더라면 죽음을 당하는 일은 애당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담화문은 이어 “우리 군인은 날이 채 밝지 않은 이른 새벽의 시계상 제한으로 침입 대상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식별할 수 없는 조건에서”라거나 “(박 씨가) 황망히 달아나기 시작하였으며”라는 등의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정부 합동조사단은 지난달 25일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 “북한이 피격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오전 4시 55분에서 5시경에는 주변이 환하게 보이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합조단은 2일 모의실험 결과 발표에선 북한군이 100m 안에서 박 씨에게 조준 사격했으며, 피격 당시 박 씨는 멈춰 섰거나 천천히 걷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군은 ‘교전규칙’을 들먹이며 “세계 그 어느 나라 군대에서나 이러한 요구는 꼭 같이 적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현실”이라고 강변했다.

텅 빈 남북출입사무소 북한 인민군 금강산지구 군부대 대변인이 금강산 관광지구에 체류하고 있는 남측 인원의 추방조치 의사를 밝힌 3일 오후 금강산 출입 통로인 강원 고성군 남북출입사무소는 텅 비어 있었다. 고성=변영욱 기자
텅 빈 남북출입사무소 북한 인민군 금강산지구 군부대 대변인이 금강산 관광지구에 체류하고 있는 남측 인원의 추방조치 의사를 밝힌 3일 오후 금강산 출입 통로인 강원 고성군 남북출입사무소는 텅 비어 있었다. 고성=변영욱 기자

▽이명박 대통령 비방=담화문은 이번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바라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반공화국 대결 책동”이라고 비난했다.

정부가 국제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이번 사건을 제기한 것에 대해선 “구차하게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추태”라고 매도했다. 또 한국 정부의 대응을 “남조선 인민들의 생명권을 미국산 미친 소고기병의 희생물로 만든 책임을 모면하려는 (중략) 유치한 정치사기극”이라고 폄훼했다.

▽아전인수와 곡해=담화문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남북 당국이 맺은 합의서 내용도 아전인수식으로 곡해했다.

특히 2004년 남북 당국이 합의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 제10조에 규정된 신변안전 조항이 “관광지 안에서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통일부 당국자는 “관광지를 이탈한 관광객을 북한군이 쏠 수 있다는 내용은 합의서 어느 곳에도 없다“고 반박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