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맹 선택, 韓- 日외교 길 갈랐다

  • 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5분


‘독도 영유권’ 문제로 본 한-미-일 삼각관계

한국

‘동북아 균형자’ 고집 대미관계 악화

美제지 불구 대북교류 강화도 불씨

일본

미-일 동맹에 국가 안보-미래 걸어

국내정치 손해에도 밀착관계 유지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 영유권 표기를 바꾸면서 한 ‘기침’ 때문에 한국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결정이 미 정부의 정치적 판단인지, BGN 실무자의 ‘자료 정리’인지 실체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해졌다. 미국의 한 지리학자가 내린 결정조차도 ‘미국의 힘’이란 배경이 덧씌워지면 한국 국익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외교통상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30일 “국익을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엉뚱하게도 한 지리학자가 일깨워준 셈”이라고 말했다.

○한일 간 워싱턴 경쟁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은 한미동맹을 과거 보수정권 때보다 느슨하게 유지해 왔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시적인 북-미 관계 개선이 있었지만,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포용하고, 대(對)중국 군사교류까지 거론하면서 급부상한 중국을 예우했다. ‘군사동맹’인 미국은 이런 기류를 부담스러워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미동맹 중시’ 발언을 틈틈이 내놓는 노련함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2001년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대북포용정책을 강조하다가 동맹 강화의 기회를 놓쳤다. 2002년 북한의 비밀 핵 개발이 불거졌을 때도 참모를 보내 “별것 아니다”라고 반응했다가 워싱턴의 신뢰를 잃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동북아 균형자론’ 때문에 ‘함께할 지도자’라는 인상을 심는 데 실패했다. 2005년 경주 정상회담 때는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을 절대 공격하지 말라”며 공격적으로 따졌다가, “왜 한국 대통령은 ‘북한 공격 의지가 없다’는 나의 공개발언도 믿지 못하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반면 일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한 2001년 이후 자국 내 반북한 정서를 밑바탕으로 중국 견제 차원의 미일동맹을 밀착시켰다. 워싱턴포스트는 고이즈미에 대해 “일본 국내정치에서 손해를 볼지라도 철학적 지향점을 공유하는 미국 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했다”고 썼다.

창원대 이기완 교수는 “동맹은 한 국가의 정치적 선택”이라며 “1998년 이후 일본의 자민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미일관계에 일본의 안보와 앞날을 거는 세력이 전면에 포진한 만큼 빠른 동맹 강화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은 냉전이 해체되던 1990년 전후에 비춰 볼 때 상전벽해에 가깝다. 1991년 걸프전이 터지자 일본은 미국의 전쟁지원금에 인색한 반응을 내놓았다. 워싱턴에서는 “신념을 같이하고 사선을 같이 넘을 동맹은 아니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당시 일본 신문에는 미국과 한국의 두 장신(長身)이 농구를 하는 옆에서 키 작은 일본이 안간힘을 쓰는 만평(漫評)이 실렸다.

○북한 핵 문제와 동맹의 방정식

북한의 존재, 그리고 2002년 말 다시 불거진 북핵 문제는 대체로 한미동맹의 약화, 미일동맹의 강화를 불렀다.

미국이 2002년 8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계획을 알렸을 때 한국 정부는 남북 도로 연결 사업 등 교류협력을 강행했고,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의 9월 방북 직후였음에도 국교 정상화 노력을 중단했다.

일본이 2006년 말 북한의 핵 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정책에 불편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가 올여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려 하자 북-미 관계 개선과 일본인 납치 문제를 연계하려는 일본 정부가 난처한 표정이다. 그러나 배정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럼에도 일본은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미일동맹의 전략적 제휴 속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과제

지난 10년간 동맹이완기에 나타난 한국 지도자의 언행과 반미기류는 워싱턴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일본을 민주동맹으로, 한국을 ‘글로벌 파트너’로 불렀다.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의 한미관계는 ‘정상 밀착-대중 이완’이라는 양 갈래 흐름이 나타났다. 동맹을 부쩍 강조하는 이 대통령은 4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으로 상징되는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그러나 한미 쇠고기협상이 촉발한 촛불정국에서 CNN방송에 등장한 촛불시위대는 반미의 메시지를 워싱턴에 던졌다. 이런 상황에선 미국이 한국을 일본보다 중요한 동맹으로 여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결국 미국에 대한 지도자의 인식과 대중적 지지라는 두 트랙이 모두 작동해야 건강한 동맹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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